필자가 선별한 경제적 해자 기업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선별했다:
- 해자의 수명이 길 것: 기술, 규제, 소비 트렌드 변화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여야 한다.
- 해자가 스스로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내재하고 있을 것: 해자가 깊어도 정체된 상태라면 언젠가는 경쟁 환경의 변화에 잠식될 수 있다. 반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지는 구조를 가진 기업은 오히려 시간이 아군이 된다.
다만, 아래 리스트만 보고 투자를 결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강력한 해자를 지닌 기업이라도 지정학적 위험, 규제 리스크, 산업 구조 변화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장기 수익성이 훼손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유튜브와 클라우드라는 탄탄한 해자를 보유하고도 각국에서 반독점 규제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고, 블랙록은 운용 규모가 압도적이지만, 정치·금융 규제 환경 변화에 따라 사업 모델이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2) 탁월하지 않은 필자가 선별한 기업이므로 100% 정확하다고 볼 수도 없다. 약 10년 이상 필자의 투자 성공률은 높아도 5할 정도였다는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따라서 해자 분석은 기업의 ‘구조적 잠재력’을 평가하는 도구일 뿐, 실제 투자 여부를 결정하려면 리스크 평가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1.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OS와 오피스라는 기업 IT의 표준을 장악하고 있다. 이 표준 지위는 전환 비용을 극도로 높인다. 여기에 Azure 클라우드와 Teams, OneDrive 같은 SaaS 서비스가 결합해 고객 락인을 강화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윈도우와 오피스를 사용하다가 Azure로 서버를 이전하면, 기존 데이터와 업무 흐름이 Azure 환경에 맞춰 최적화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와 사용자 습관은 다시 마이크로소프트 생태계에 종속된다. Azure에서 발전한 AI 기술은 오피스와 윈도우에 통합되어 생산성을 높이고, 이 생산성 향상이 다시 마이크로소프트 의존도를 높인다. 이렇게 OS/오피스에서 Azure, 그리고 AI와 SaaS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구축된다.
2. 무디스 / S&P 글로벌
무디스와 S&P 글로벌은 규제 기반 독점 구조를 가진 신용평가 기관이다. 각국 금융 규제가 이들 기관의 평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채권 발행에 필수 요건으로 만든다. 이로 인해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평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이는 방대한 데이터와 분석 노하우는 다시 평가 품질을 높이고, 이는 규제기관과 시장 참여자의 신뢰를 강화한다. 신뢰가 강화될수록 시장 점유율은 높아지고,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게 된다. 데이터와 신뢰가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 속에서 독점적 지위는 더욱 공고해진다.
3. 버크셔 해서웨이
버크셔 해서웨이는 철도, 보험, 소비재 등 다양한 산업에서 해자를 가진 자회사를 보유한 지주회사다. 특히 보험 사업에서 발생하는 float는 버크셔가 저비용 자본을 장기간 보유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자본은 경기 변동과 무관하게 꾸준히 유입되며, 이를 장기적으로 우량 기업에 재투자해 복리 효과를 극대화한다.
철도 회사 BNSF와 같은 인프라 자산은 물리적 진입장벽이 높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보장한다. 소비재 자회사는 브랜드와 유통망으로 보호받는다. 이렇게 산업과 사업 모델이 다른 여러 해자가 한 포트폴리오에 모여 상호 보완하며, 자본 배분 역량이 이 구조를 더욱 강화한다.
- 워렌 버핏 사후에도 자본 배분 역량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쌓여진 자산을 기반으로 인덱스 펀드에만 투자해도 규모의 크기로 인해 경쟁자보다 절대적인 크기의 수익을 더 쌓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4. 블랙록
블랙록은 운용자산 규모(AUM) 세계 1위라는 압도적 위치와 Aladdin이라는 독점 리스크 관리 플랫폼을 동시에 보유한다.
AUM이 커질수록 단가 경쟁력이 높아지고, 이는 더 많은 기관 고객을 유치한다. 기관 고객은 Aladdin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리스크를 분석하는데, 이 플랫폼이 한 번 기업 내부 시스템에 통합되면 전환 비용이 매우 높아진다. 고객이 늘어날수록 운용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 데이터가 Aladdin의 분석 정확도를 높인다. 분석력이 높아질수록 플랫폼의 가치는 커지고, 이는 다시 신규 고객 유입으로 이어진다. 규모와 기술 플랫폼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이 선순환은 금융업계에서 독보적이다.
5. 아마존
아마존의 해자는 이중 구조다.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물류 인프라와 프라임 멤버십이고, 다른 하나는 글로벌 1위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다. 물류망은 수백 개의 물류센터와 라스트마일 배송망으로 구성되며, 판매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락인한다. 프라임 멤버십은 무료배송, 프라임 비디오, 프라임 뮤직 등 다양한 혜택으로 고객 이탈을 최소화한다. AWS는 전환 비용이 높아 기업 고객을 장기간 묶어두며, 서비스 다양성 덕분에 사용 범위를 점점 넓힌다.
두 사업 부문은 데이터를 공유해 효율을 높이고, AWS에서 얻은 기술 혁신은 물류 자동화와 소비자 경험 개선에 반영된다. 이렇게 각각의 해자가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가 시간이 갈수록 더 견고해진다.
6. 구글
구글 역시 유튜브와 구글 클라우드(GCP)를 두 축으로 해자를 구축하고 있다. 유튜브는 전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으로, 제작자와 시청자가 서로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지닌다. 콘텐츠와 시청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추천 알고리즘이 정교해지고, 이는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려 광고 수익을 높인다. 광고 수익은 제작자 보상으로 이어져 더 많은 콘텐츠를 유인하고,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는 순환을 만든다.
구글 클라우드는 AI와 대규모 데이터 분석 역량을 기반으로 기업 고객을 묶어두며, 서비스 품질 향상이 다시 신규 고객 유입으로 연결된다. 두 축은 데이터와 기술을 공유하며 서로의 가치를 높이고, 장기적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복합 해자를 형성한다.
7. 코카콜라
코카콜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 중 하나와 거대한 유통망을 동시에 가진 기업이다. 브랜드는 단순한 인지도를 넘어, 소비자에게 ‘코카콜라=대표 탄산음료’라는 고정 관념을 심어준다. 이는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더욱 강화된다.
수십만 개의 소매점과 외식 채널과 맺은 독점적 혹은 준독점적 계약은 경쟁자가 동일한 유통망을 구축하기 어렵게 만든다. 강력한 브랜드는 소매점의 매대 배치를 유리하게 하고, 이는 소비자의 구매 확률을 높인다. 판매량이 높아지면 유통 파트너와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고, 이는 경쟁사의 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건강 트렌드 변화라는 리스크가 있지만, 브랜드와 유통망이라는 이중 방어벽이 구축된 이상 단기간에 무너뜨리기는 어렵다.
8.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배급 능력, 글로벌 브랜드, 그리고 방대한 시청 데이터라는 세 가지 축으로 해자를 쌓았다. 구독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입할 수 있고, 이는 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콘텐츠로 이어진다. 양질의 콘텐츠는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고 기존 가입자의 이탈을 줄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청 데이터는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을 정교하게 만들고, 이는 콘텐츠 소비를 늘려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린다. 늘어난 데이터는 다시 제작 전략에 반영되어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만들게 한다. 이렇게 콘텐츠·데이터·구독자 규모가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가 완성된다.
다른 OTT 서비스도 규모를 키우려 하지만, 이 선순환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 기간 동안 넷플릭스는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
9. 코스트코
코스트코의 해자는 단순한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회원제와 공급망 신뢰를 기반으로 한 복합 구조다. 회원이 내는 연회비는 매출총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은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가능하게 한다. 낮은 가격은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고, 충성도는 회원 수 증가로 이어진다. 회원이 늘면 구매량이 증가하고, 이는 공급업체와의 가격 협상력을 높인다. 협상력이 높아질수록 더 낮은 단가로 물건을 확보할 수 있고, 다시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이 선순환은 신규 진입자가 단기간에 흉내낼 수 없다. 창고형 매장이라는 물리적 경험, 제한된 SKU에서 오는 집중된 구매력, 그리고 ‘코스트코에서 파는 물건은 품질 대비 가격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브랜드 인식이 결합해 해자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10. 마무리
이 9개 기업의 공통점은 해자가 단순히 ‘지금 강하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해자가 만드는 선순환은 경쟁자가 따라잡으려는 순간 이미 더 먼 곳으로 달아나 있는 상태를 만든다.
흥미롭게도, 필자가 선별한 9개 기업 모두 미국이다. 이는 우연이라기보다 구조적 필연에 가까워 보인다. 미국은 강력한 법·규제 시스템과 거대한 내수 시장, 그리고 발달한 자본시장을 동시에 갖춘 드문 국가다. 여기에 인터넷·클라우드·모바일 혁신의 초기 파동을 미국 기업이 주도하며 글로벌 표준을 선점했고, 그 결과 네트워크 효과와 브랜드, 기술이 얽힌 다층 해자가 형성됐다.
반면 유럽·아시아 기업들은 규제 장벽, 지정학 리스크, 내수 의존도, 브랜드 글로벌 인지도 등의 한계로 장기 선순환 구조를 가진 기업을 찾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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