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기술의 양면성

이 책은 기술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묻는다. 저자인 크리스틴 로젠(Christine Rosen)은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경험을 얕게 만들고, 대면의 밀도를 약화시키며, 감각적 충만함을 줄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마트폰, 온라인 플랫폼, 알고리즘 중심 문화가 우리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기다림과 지루함 같은 사유의 시간을 제거하며, 물리적 공간에서 형성되던 공동체 경험을 대체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펼친다.

문제 제기 자체는 충분히 유효하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즉각 반응 문화는 강화되었고, 알림과 피드 중심의 정보 소비는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느린 읽기, 손글씨, 의도적 고독과 같은 제안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지적 균형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실천적 가치가 있다. 기술을 무조건 거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속도에 휩쓸리지 말자는 경고로 읽는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책의 논지는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기술이 가져온 상실의 측면은 상세히 다루지만, 확장과 민주화의 측면은 상대적으로 얕게 다뤄진다. 디지털이 감각을 평면화한다는 주장에는 많은 사례가 제시되지만, 디지털이 접근성을 확장하고 지리적 장벽을 무너뜨린 측면은 균형 있게 탐구되지 않는다. 온라인 미술관을 예로 들어보면, 화면을 통한 관람이 물리적 질감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전에는 접근조차 어려웠던 수많은 사람이 예술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사실이다. 깊이 있는 관람이 소수에게만 해당된다는 구조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으며, 디지털이 이를 새롭게 만들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험의 균질화라는 주장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과거는 소수의 매체와 제한된 정보 채널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였다. 지금은 오히려 세분화와 분절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된 환경에 가깝다. 플랫폼 구조 안에 묶여 있다는 점에서 표면적 유사성이 존재할 수는 있으나, 선택의 폭과 정보 접근성은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 이를 단순히 균질화라고 규정하는 것은 매체 구조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깊이의 감소라는 주장 또한 평균과 소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깊이 있는 사유와 창조는 언제나 소수의 영역이었다. 기술 발전의 속도와 복잡도는 고도로 훈련된 인지 집단의 존재를 전제한다. 오늘날 과학과 공학, 컴퓨팅의 수준을 고려하면 깊은 사유 집단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접근성이 확대되면서 과거에는 교육 제도에 묶여 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깊이에 도달할 가능성이 늘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평균적 주의력이 약화되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깊은 소수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책에서 물리적 경험을 암묵적으로 더 충만한 기준으로 두는 점도 비판 가능하다. 오프라인 미술관 역시 대부분의 관람객은 작품을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 복제품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원본이라는 개념 역시 사회적 상징 자본과 얽혀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우열 관계라기보다 각자의 장단점을 가진 매체 환경에 가깝다. 온라인은 접근성이 뛰어나고, 오프라인은 공간성과 물리적 밀도를 제공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이 차이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 책은 기술을 멈추자는 선언이라기보다, 기술 속도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다만 그 경고가 기술의 양면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상실 서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기술은 침식과 확장을 동시에 가져온다. 감각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있는 동시에, 새로운 감각과 연결 방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복합성을 균형 있게 다뤘다면 논지는 더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은 멈추지 않지만, 인간은 자동 모드로 살아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손으로 글을 쓰고, 일부러 생각의 시간을 확보하며, 즉각 반응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행위가 아니라 기술 속에서 주체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환기시킨다.

‘경험의 멸종’이라는 표현은 다소 과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과장이더라도 질문을 던지는 힘은 있다. 문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방향으로 고정하는 순간이다. 기술은 필연적 흐름이며, 인간은 그 안에서 적응하고 재구성해왔다. 경험은 사라지기보다는 재배치되고 중첩되는 과정에 있다.

PS – 우린 생각보다 취약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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