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멍거는 1994년 서던 캘리포니아 마셜 경영대학원 강연에서 자신이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성장 잠재력이 높은 소규모 기업을 찾아내 장기 투자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기업의 규모가 작을 때 진입하여 장기적인 복리 효과를 극대화하는 가치투자자의 이상적인 접근법이다. 초기 단계의 우량 기업을 발굴해 그 성장의 과실을 온전히 누리는 방식은 이론적으로 매우 높은 기대 수익률을 보장한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거시적인 제도 변화와 구조적 진화 과정을 면밀히 짚어보면 현시점에서 이러한 투자 방식을 고수하기란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이는 단순히 좋은 기업을 찾는 안목의 문제를 넘어, 시장을 구성하는 규제와 자본의 흐름 자체가 소규모 상장 기업의 출현과 성장을 가로막는 방향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첫 번째 단초는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강력한 회계 및 준법 규제들이다. 과거 엔론과 월드컴 등 대규모 회계 부정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미국은 사베인스-옥슬리법을 비롯한 엄격한 기업 개혁 법안들을 제정했다.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들은 상장 기업에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의 회계 투명성과 공시 의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 대응에 소요되는 고정 비용이 소규모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다는 점이다.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외부 감사를 받으며 법적 준수 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소모된다. 대기업에 이는 전체 매출 대비 미미한 비율에 불과하지만, 초기 성장에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소규모 기업에는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무시할 수 없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 구조적 변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발생한 글로벌 금융 규제 강화와 유동성의 이동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바젤 III 협정이 단계적으로 도입되고 강화되면서 전통적인 은행권의 대출 조건과 위험 자산 운용 규제는 매우 엄격해졌다. 은행의 자금 공급 줄줄이 막히자 시장의 거대한 유동성은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모 자본 시장으로 급격히 쏠렸다. 벤처캐피탈과 사모펀드 시장으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유입되면서 비상장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소규모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고 생존하기 위해 원치 않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공개를 선택해야 했으나, 이제는 공모 시장에 나가지 않고도 사모 시장에서 충분한 자금을 융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유망한 소규모 기업들이 일찍부터 IPO를 단행할 유인이 사라졌다. 역량 있는 기업들은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상장 상태를 피하면서 비상장 상태를 유지한 채 유니콘이나 데카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경로를 택한다. 성장의 가장 가파른 구간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사모 자본들과 함께 비상장 단계에서 대부분 선점하는 구조가 정착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비상장 시기에 이미 대기업 규모로 변모한 뒤에야 비로소 공모 시장에 진입한다. 이는 일반 대중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모 시장에 과거 멍거가 말했던 ‘성장 초입의 소규모 우량 기업’이 등장할 확률을 구조적으로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공모 시장에 조기 진입하는 소규모 기업들은 사모 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실패했거나 위험도가 극도로 높은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등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선택지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 번째 요인은 현대 주주 자본주의의 정착이 가져온 경영 환경의 변화와 자원 배분의 왜곡이다. 주주 가치를 제고하고 소액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규약들이 정비되었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경영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원을 배분하는 행위를 방해하고 있다. 상장 시장의 투자자들은 분기별 실적과 단기적인 주가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관 투자자들과 행동주의 펀드들은 단기적인 가치 가시화를 요구하며 경영진을 압박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상장 기업의 경영자는 5년이나 10년 뒤의 구조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며 대규모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를 감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과감한 장기 투자를 선택했다가 단기 실적이 악화되면 주주들의 거센 반발과 주가 하락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영자들은 주주 환원이라는 명목하에 미래의 성장을 담보로 현재의 이익을 쥐어짜는 방어적인 자원 배분을 선택하게 된다.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쓰여야 할 재원이 당장 눈앞의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으로 우선 배분되는 현상이 빈번해진다. 상장하는 순간 경영자가 독자적인 비전을 가지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재량권이 크게 제약되는 구조다. 이러한 이유로 소규모 상장 기업이 제도적 압박을 견디며 대기업으로 자라나는 사례는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자본시장의 진화가 가진 뚜렷한 양면성을 보여준다. 주주 가치 제고와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제도의 정비는 전 세계의 자본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며 전례 없는 투자 붐을 일으켰고 투자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줄어들고 불법적인 자본 유출이 통제되면서 시장의 신뢰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한 진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스템의 투명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축한 안전장치들이 반대편에서는 소규모 기업의 상장 기피, 사모 시장으로의 기회 쏠림, 경영자의 단기주의 팽배라는 예기치 못한 구조적 변화를 낳았다.
시장이 더 안전하고 깨끗해진 대가로 투자자들은 역동적인 초기 기업의 성장 궤도에 조기 동승할 수 있는 기회의 확률을 지불하게 되었다. 현재 시장에 성장할 수 있는 소규모 기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자본 시장의 구조적 메커니즘이 변하면서 공모 시장 안에서 그러한 기업을 발굴해 낼 수 있는 절대적인 확률은 과거보다 확연히 낮아졌다. 따라서 멍거가 제시했던 이상적인 투자 방식의 유효성을 신뢰하더라도, 현대의 투자자는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탐색 비용과 엄격한 검증 과정을 견뎌내야만 한다. 단순히 개별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제도와 규제가 경영자의 심리와 자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환경이 되었다.
PS – 그냥 투자 자체가 더 어려워졌다. AI 시대는 난도의 심화가 더 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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