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구조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

국민연금 폐지를 논의하면 ‘노후 빈곤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타당한 문제 제기다. 하지만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폐지 논의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제도의 한계 때문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1. 구조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연금 시스템

국민연금 기금은 2040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2055년경에는 고갈될 것이란 예측이 이미 2024년에 제시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갈 시점을 2060년대로 보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출산율은 0.7 아래로 내려앉았고,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는 시점에 진입하면서, 앞으로 연금 재정은 더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 세대가 보험료를 내면, 그 돈으로 앞 세대에게 연금을 주는 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단계’ 방식과 유사하다. 초기 가입자는 혜택을 받고, 후속 세대는 점점 더 큰 부담을 지게 되는 이 구조는 인구가 팽창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지금처럼 인구가 급감하는 사회에선 지속될 수 없다.

출산율을 단기간에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듯, 이는 단순한 ‘개혁’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구조는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 ‘보험료를 더 걷자’, ‘수급 연령을 올리자’, ‘소득대체율을 낮추자’는 기존 개혁안들은 결국 모두 현세대의 부담을 키우는 방식이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한다. 왜 유지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

2. 청년 세대의 국민연금 신뢰도

2024년 기준, 20~30대의 약 47%는 국민연금 폐지에 찬성하고, 61%는 국민연금을 ‘사기 같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2025년, 1년 새 상황이 나아졌을까? 오히려 청년 세대의 불신은 더 깊어졌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 난 매달 수십만 원을 납부하지만, 나중에 받을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다.
  • 기금이 고갈되면 세금으로 메우겠다는 말이 ‘부담은 계속 너희 몫’이라는 뜻 아닌가?
  • 지금이라도 강제납부를 중단하고, 내 돈은 내가 알아서 굴리고 대비하는 게 낫겠다.

국민연금은 세대 간 신뢰를 잃었다. 이는 복지제도로선 치명적이다.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억지로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 갈등만 심화시킬 뿐이다.

3. 실질적인 보장과 불공정성

국민연금 수령자의 평균 연금액은 약 월 92만 원, 국민연금연구원이 제시한 노후 최소생활비 136만 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결국 국민연금 하나로는 노후가 불안하다. 게다가 OECD 평균 소득대체율 50.7%에 한참 못 미치는 31.6% 수준으로, 보장성은 약하고, 신뢰도는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돈을 걷고 있다. 왜일까? 기존 기금 수급자에게 돈을 주기 위해서다. 미래 세대는 현재 세대의 연금을 떠안고 있다.

초기 가입자와 최근 가입자의 수익비 차이가 너무 크다. 기성세대는 수익비가 3 이상인 반면, 앞으로 가입하는 세대는 1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는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넘어 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흔드는 수준이다.

4. 대안이 있나?

국민연금을 폐지하더라도 공적 빈곤 방지 시스템은 유지할 수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점진적 폐지 및 전환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1. 기초연금 강화 및 노인 기본소득 전환: 가입 이력에 상관없이 일정 연령 이상이면 국가가 기초연금을 보편화·강화하여, 노후 최저생활비를 보장하는 안전망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축해야 한다.
  2. 개인·퇴직연금 중심의 민간 시스템 전환: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실질적인 노후소득 주축이 되도록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젊을 때부터 장기 가입을 유도하는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특히 개인연금 투자처도 확대해, 해외 개별주식, ETF 등 자산 다양화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는 노후대비를 자산 축적과 연결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3. 기존 기납부자의 연금 채권 정리: 이미 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로 국가가 세금으로 상환하거나, 일정 기간 동안 연금을 지급한 뒤 종료하는 방식으로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다.
  4. 금융교육 및 노후설계 컨설팅 강화: 제도를 없앤다고 끝이 아니다. 국민이 스스로 노후를 설계할 수 있도록 금융 교육과 컨설팅 지원을 의무화해야 한다. 정부가 책임질 역할은 여기에 있다.

5. 공적연금과 노인

폐지 반대 측은 항상 묻는다. ‘그럼 노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이는 매우 중요하면서 실질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연금이 있으면 노인은 안 가난한가?’라는 반문이 따라야 한다.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 평균 연금액 92만 원이라는 수치는 이미 답을 말해주고 있다. 국민연금이 존재함에도 10명 중 4명은 빈곤층이며, 76세 이상 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빈곤 상태다.

‘국민연금이 있으니 노인 빈곤이 해결된다’는 착각이 문제다. 지금 필요한 건 ‘무조건 국민연금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서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에 맞는 다층적이고 유연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6. 폐지는 무책임이 아니라, 새로운 책임의 시작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결코 ‘국가가 손 떼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국가는 여전히 책임져야 한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

국민연금 폐지는 어떤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더는 미룰 수는 없다. 지금의 연금제도는 지속 불가능하며, 청년 세대의 신뢰도 바닥이다. 이대로 두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책임한 선택이다.

같이 보면 좋은 글
한국에게 원전 산업이 중요한 이유
전작권 환수 지금이 적기인가?, 군사주권과 실질 안보 사이에서
중국 용산 부지 매입과 서해 항행 금지, 왜 문제인가?

미국 한국 관세 협상, 국익을 위한 선택과 그 대가

댓글 남기기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