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그래프테크 1억 5천만 달러 혼합 공모 제출‘ 글에 후속글이다.
그래프테크 인터내셔널이 투자은행 에버코어와 5,000만 불 규모의 주식 분배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일반적인 유상증자와 달리 시장 상황에 맞춰 주식을 수시로 발행해 매각하는 ATM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업이 한 번에 대규모 신주를 발행해 유통시장에 충격을 주는 대신, 주가 추이와 거래량을 고려해 기회주의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의도다. 최근 전기로 전극봉 시장의 다운사이클 속에서 재무적 압박을 받아온 그래프테크는 이번 계약을 통해 향후 업황 회복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동성 버퍼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번에 도입한 ATM 프로그램은 자본시장에서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계약 체결과 동시에 5,000만 불어치의 주식이 즉각적으로 시장에 쏟아지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프테크가 판매 주관사인 에버코어에 신주 발행을 요청하면, 에버코어는 정규 거래 시간 동안 장내 매수세를 확인하며 주식을 조금씩 분할 매도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실시간으로 유입되는 매물이 기존 주주의 차익 실현 물량인지 회사가 새로 발행한 주식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이러한 방식은 대규모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블록딜이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비해 단기적인 주가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사측이 에버코어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조달 대금의 최대 3%로 설정되었다.
이번 증자 계약으로 인한 가치 희석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시가총액을 선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약 19.2%의 지분 희석이 발생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발행 금액만 5,000만 불로 고정되어 있을 뿐 주가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실제 희석률을 특정 수치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만약 전방 산업 둔화가 이어져 주가가 지금보다 더 하락한 상태에서 발행을 강행하면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 희석률은 현재 기준보다 훨씬 더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전극봉 가격 인상 기조가 안착하고 주가가 급격히 상승한다면 발행해야 하는 주식 수가 줄어들어 실제 희석률은 현재 추정치보다 크게 낮아질 수도 있다. 결국 향후 주가 추이에 따라 주주들이 짊어져야 할 실제 가치 희석의 크기가 결정되는 구조다.
재무적 관점에서 이번 조달의 핵심 목적은 부채 상환보다 운전자본 확충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래프테크의 주요 채무 만기는 이미 2029년 12월로 유예되어 장기화된 상태이며, 현재 회사가 안고 있는 전체 부채 규모에 비하면 이번에 조달하는 5,000만 불은 부채 차환을 논하기에 턱없이 작은 액수다. 따라서 이번 증자는 당장의 채무 이행보다는 전극봉 산업의 독특한 현금 흐름 주기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보인다.
전극봉 산업은 원자재 확보부터 최종 제품 인도 및 대금 회수까지 기간이 길어 돈이 잘 돌지 않는 대표적인 자본 집약적 산업이다. 현재 그래프테크가 공시상 보유한 가용 유동성은 약 3억 불 수준으로 나타나지만, 이 중 3분의 2는 가변적인 부채 성격이 섞여 있어 온전한 여유 자금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 현재 연간 1억 2,000만 불에서 1억 3,000만 불 안팎의 현금이 잔고에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인데, 이러한 재무 상태는 전극봉 업황이 바닥을 치고 돌아설 때 문제가 된다. 전방 철강사들의 수요가 살아나고 가동률이 올라가면 그래프테크 역시 생산을 늘려야 하므로 운전자본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매출이 늘어나는 초기 단계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제품을 만들어 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주식 분배 계약은 별도의 만기일이나 고정된 기한을 두지 않았다. 그래프테크와 에버코어 양사 중 어느 한쪽이 서면으로 통지하면 페널티 없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수시 해지 구조이며, 당장 운전자본 수요가 시급하지 않다면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고 대기할 수 있다. 만약 최근 회사가 추진 중인 비계약 물량에 대한 가격 인상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자체 현금 흐름이 개선된다면, 주식을 단 한 주도 발행하지 않은 채 이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것도 가능하다(그럴 일은 희박할 것 같음).
PS – 원래는 부정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최근 흐름을 보면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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