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은 잘못이지만, 국익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1. 러시아의 침공
2022년 2월 러시아는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는 국제법상 주권국가를 무력으로 침범한 명백한 침략 행위로 규정된다. 유엔 헌장과 국제 규범을 기준으로 봐도 정당화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국제사회는 곧바로 반응했다. 유럽연합과 미국을 중심으로 제재가 가해졌고, 무기와 군수품이 우크라이나로 대거 제공되었다. 세계 다수 국가가 러시아를 규탄하면서 국제 여론은 전반적으로 우크라이나 편에 섰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가 일방적 가해자라는 그림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전쟁은 단순히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짓밟은 사건으로만 환원하기 어렵다. 그 이면에는 냉전 종식 이후 불안정하게 설계된 유럽의 안보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부의 언어·민족 갈등, 소련 시절의 역사적 기억, 러시아의 제국적 안보관이 겹겹이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전쟁의 기원을 좁게만 보면 침공이라는 행위 자체가 전부지만, 넓게 보면 수십 년 동안 쌓여온 구조적 요인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 입장에서 가장 큰 불안 요인은 나토의 동진이었다. 1990년대 초 독일 통일과 냉전 해체 과정에서 서방이 ‘나토가 동쪽으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소련 지도부에 전달했는지 여부는 지금도 논란이다. 공식적인 조약이나 합의문은 존재하지 않지만, 러시아는 정치적 약속이 분명히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이후 양측의 불신을 키우는 뇌관이 되었다.
실제로 냉전 이후 나토는 꾸준히 확대되었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가 1999년에 가입했고, 2004년에는 발트 3국까지 합류했다. 러시아가 전통적 영향권으로 여겼던 국가들이 차례차례 서방 진영에 편입되면서, 국경선 근처까지 나토 군사력이 다가왔다. 여기에 더해 2008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입 가능성이 언급되자, 러시아는 자국 안보가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이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는 단순히 영토 확장이나 제국주의적 욕망 때문에만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서방의 시각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이 국제 규범을 무너뜨린 불법 행위였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는 ‘서방의 군사적 압박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라는 서사가 형성되었다. 물론 이는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왜 이런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불안이라는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2. 한국인의 시각
한국인의 시각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면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평가와는 다른 맥락이 드러난다. 소련 시절 러시아는 한국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며 북한을 지원했다. 이 기억은 한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고, 한동안 러시아를 적대적 세력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탈냉전기의 러시아는 한국에 새로운 협력 파트너로 다가왔다.
에너지 협력은 가장 대표적인 분야였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였고, 러시아는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 주요 원천이었다. 특히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와 같은 사업은 한국 기업들에게 중요한 기회로 작용했다. 이와 함께 극동 개발 협력, 철도·항만 프로젝트 참여 논의 등도 이어졌다. 사할린 교민 문제 역시 일정 부분 진전을 보면서 양국 관계는 실용적 기반 위에서 안정적으로 발전했다.
안보 측면에서도 러시아와의 관계는 단순한 적대 구도로만 볼 수 없었다. 소련 붕괴 직후 한국은 러시아와 수교를 맺으면서 ‘불곰사업’을 통해 T-80U 전차, BMP-3 보병전투차, 이글라 휴대용 대공미사일 등 다양한 장비를 도입했다. 이는 러시아의 채무 상환과 한국의 전력 보강이 맞물린 협력이었다. 또한 한국형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KM-SAM, ‘천궁’) 개발 과정에서는 러시아 S-300 계열 기술이 일부 반영되었으며, 방공체계 현대화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러시아는 과거 적대국이었지만 한국 방위산업에 일정한 기술적 기여를 한 파트너로 작용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우주·미사일 분야에서도 협력 대상이었다. 1990년대 한국은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아 위성 발사체 관련 자료를 확보했고, 나로호(KSLV-1) 발사에는 러시아의 RD-151 엔진이 실제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이 독자적 발사체와 우주 기술을 키워가는 데 발판이 되었다. 즉, 러시아는 단순한 과거의 적대적 이미지와 달리, 한국의 방위산업과 첨단 기술 발전 과정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 협력자였다.
반면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는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국제적으로는 피해자이자 동정받아야 할 국가라 할지라도, 한국인 입장에서는 감정적 공감이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외정책적 관점에서도 우크라이나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거의 없는 국가다. 지정학적으로도 동북아 안보 구조와는 거리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한국에 중요한 시장이나 자원 공급국은 아니다.
이런 대비는 도덕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러시아의 침공은 규범을 어긴 행위로 평가되며, 공적 발언에서 우크라이나에 연대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동시에 한국의 현실적 이해와 자원·안보·기술의 축을 살피면, 러시아와의 채널을 완전히 접는 선택이 비용 대비 효용이 낮다는 결론에 이른다. 요컨대 한국인의 시각에서 이 전쟁은 도덕적 연대와 실용적 이해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마무리
러시아의 침공은 국제법과 국제 규범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다. 주권국가에 대한 무력 사용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도덕적·규범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익을 우선하는 현실적 관점에서는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한국에 중요한 에너지 공급국이며, 첨단 방산 기술과 우주 개발 경험을 제공했던 협력자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 문제에서도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가로, 한국 안보 전략에서 무시하기 어렵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한국과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미약하고, 과거에는 오히려 불리한 입장을 취한 사례가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은 도덕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는 데 있다. 표면적으로는 서방과 발맞추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면서도, 이면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모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정학적 제약 속에서 한국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해법이다. 도덕적 원칙과 현실적 이해는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두 층위를 동시에 직시하면서 국가 이익을 최대화하는 외교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PS –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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