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2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대면 회담을 요청했다.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대통령에게 공식 서한을 보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제3의 중립국에서 만나 종전 담판을 짓자고 요구하며 협상 기간 중 전면 휴전과 전쟁포로 전원 교환을 구체적 조건으로 내걸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중동 전쟁 등 다른 지정학적 위기로 쏠리는 상황에서 서방의 관심이 분산되기 전에 직접 대화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러시아 측은 대화를 원한다면 제3국이 아니라 모스크바로 직접 오라고 일축하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푸틴 대통령은 외신 간담회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식 임기가 종료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통성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이미 점령한 영토의 통제권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정식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실제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

이러한 전격적인 회담 제안은 5월 중순에 감행된 우크라이나의 모스크바 드론 대공습 이후에 진행되었다. 우크라이나는 100대가 넘는 장거리 드론을 동원해 러시아 본토 심장부인 모스크바 주변의 정유소와 주요 인프라를 타격했다. 공개서한이 발표된 당일에도 푸틴 대통령이 참석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개막식 타이밍에 맞춰 우크라이나 드론이 현장을 타격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장거리 공습 능력을 확실히 증명한 뒤 압박성 회담 제안을 던진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가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배경에는 자신들의 안방 방공망이 뚫린 상태에서 회담을 수용하는 것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군사적 무능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 같다.

러시아 지휘부는 그동안 전선이 지금 상태로 고착화되면 자국의 거대한 자원과 인구 규모 덕분에 결국 시간은 자신들의 편에 설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서도 수도와 심장부가 직접 뚫린 이번 모스크바 공습은 상당히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푸틴 체제가 강조하던 안전 보장의 신화에 타격을 입자, 크렘린궁은 모스크바 고층 빌딩 옥상에 방공 시스템을 추가 배치했고 매년 열리던 전승절 열병식도 드론 공격 우려 때문에 탱크와 군사 장비를 제외하고 축소 진행했다.

여기에 서방의 지속적인 지원과 우크라이나의 후속 공격에 대한 공포도 러시아의 계산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 같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기술이 누적되면서 2차, 3차 추가 공격은 이미 상수가 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정부의 방공 실패를 비판하며 더 큰 공습이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겉으로는 고착화를 유도하며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모스크바와 정유시설이 연달아 타격당하면서 장기전의 비용이 예상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가 종전 협상이 어렵다고 본 이유는 본질적으로 영토의 귀속과 통제권을 다투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양측이 수용 가능한 교집합을 찾기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포함한 1991년 국경선 회복을 양보할 수 없는 주권의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고, 러시아는 이미 합병을 선언한 점령지들을 자국 영토로 공식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현재 양측 모두 새로운 한계치와 외부 변수에 직면하여 합의를 향한 압박이 전례 없이 강해진 상태인 것 같다.

우크라이나는 장거리 타격 능력을 고도화했으나 장기전으로 인한 인적 손실과 에너지 인프라 파괴 등 국가적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원조가 줄어들고 조기 종전을 압박하는 미국 우선주의 기류가 강해진 현실을 체감하고 있으며, 지원 동력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대화 주도권을 잡으려는 조급함이 있을 것이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군사 지원에 의존하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는 등 구조적 비용이 늘어나고 있으며,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푸틴 체제 내부의 잠재적 균열이나 대중적 피로감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 완전한 종전 합의는 어렵겠지만, 영토 문제를 미래의 과제로 보류하고 현재 전선 기준의 휴전이나 분쟁 동결 형태로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은 과거보다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인 EU 및 나토 가입 시도가 전쟁 요인의 하나였음을 감안하면, 정식 EU 가입을 고집하는 것은 평화 협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EU 내부의 만장일치 의사결정 구조와 우크라이나의 거대한 농업 및 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전후 곧바로 정식 회원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이 때문에 최근 국제 외교가에서는 우회적인 안보 보장과 재건 조항을 결합하는 실리적인 방향을 논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안보 보장 측면에서는 정식 회원국이 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방위력을 갖추는 이스라엘 모델이나 준회원국 지위가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다. 이는 나토나 EU의 정식 자동 개입 조항을 비껴가면서 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개별적인 양자 안보 조약을 맺어 첨단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 훈련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러시아의 명분인 우크라이나 중립화를 세워주면서 우크라이나가 다시 침략당하지 않을 물리적 억제력을 갖추도록 조항을 짜는 방법이 현실적일 것 같다. 재건 사업 조항 역시 평화 협정 문서에 다국적 기업들과 글로벌 자본이 우크라이나 인프라 재건에 대규모로 참여하도록 장치를 연동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거대 자본이 우크라이나 전역의 시설에 진출하면 러시아는 향후 우크라이나를 다시 공격할 때 서방 전체의 직접적인 자산과 이권을 타격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자본의 진출 자체가 일종의 인간 방패이자 안보 보장 조항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 내부의 여론 지형도 전쟁 초기와 비교하면 크게 변화한 것이 사실이다. 전쟁 초기에는 영토를 완전히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었으나, 전쟁이 만 4년을 넘어가면서 국가 전체가 한계에 부딪히자 여론의 균열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현지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약 40% 안팎은 서방의 확실한 안보 보장이 전제된다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어려운 타합의 일환으로 돈바스 등의 영토를 사실상 포기하거나 러시아의 통제하에 두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영토 양보 진영과 장기전을 버텨내자는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에서 평화 합의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는 찬성 여론이 절반을 넘긴 상태다.

러시아는 공습 이후 핵카드를 과시하고 있다. 모스크바 드론 공습으로 방공망이 뚫린 지 이틀 뒤에 러시아가 자국의 핵 삼각편대를 동원해 대규모 핵전력 훈련을 실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선을 고착화 시켜 우크라이나를 말려 죽이려던 시나리오가 자국 내부의 인프라 파괴로 이어지자, 우크라이나의 후속 공습을 억제하고 서방의 추가 지원을 위축시키기 위해 핵 카드라는 공포를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핵무기는 사용하기 어렵다. 실제로 발사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다른 의미이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존 핵보유국들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는 핵의 희소 가치와 독점권이 깨지는 것이다. 핵무기가 주변국으로 확산되어 너도나도 비대칭 전력을 갖추게 되는 순간 러시아가 가진 국제사회에서의 군사적, 정치적 레버리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 선을 넘겨 파멸로 몰고 갈 실익은 크지 않다. 핵 독점 체제 안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거친 협박의 이면에는 파국을 피해 현 상황을 동결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올해 안에 전격적인 합의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에너지 마비와 유가 역학, 국제 정치적 타임라인이 모두 올해 하반기를 가리키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한을 보낸 직후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보좌관이 인터뷰에서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협상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파가 들이닥쳐 부서진 에너지 인프라 때문에 국가가 완전히 멈춰 서기 전에 자신들이 모스크바를 때릴 수 있는 타격 능력을 쥐고 있을 때 판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계산인 것 같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중동 전쟁에 모든 외교력을 쏟아붓고 있는 터라 우크라이나를 향해 조속한 합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역시 겉으로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한을 거부했으나 푸틴 대통령조차 미국과 논의했던 전략적 타합안을 바탕으로 합의할 준비와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유 시설이 계속 털리는 경제적 출혈을 감안하면 러시아에게도 올해가 가기 전에 자존심을 챙기며 점령지를 굳힐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일 수 있다. 명분과 자존심 싸움 때문에 겉으로는 여전히 난타전을 벌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두 나라 모두 올해 겨울이라는 냉혹한 데드라인을 마주하고 있어 전격적인 휴전이나 동결 합의가 급물살을 탈 환경이 조성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PS – 종전이 매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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