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에셋 매니지먼트, 그래프테크 지분 일부 매각

헤지펀드가 특정 기업의 지분을 매각하는 행위 자체는 일반적인 투자 관점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매각에 주목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마라톤이 그래프테크의 단순한 주주가 아니라 주요 채권자라는 사실에 있다. 전분기부터 이어진 지속적인 매각을 통해 지분을 5% 미만으로 떨어뜨림으로써 마라톤은 대량보유 공시 의무라는 규제적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는 향후 채권자로서 그래프테크를 상대로 압박의 수위를 한층 가중시킬 수 있는 법적, 전략적 자유도를 확보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의 이러한 행보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조적 의문이 존재한다. 그래프테크의 지분 구조와 자본 구조를 면밀히 들이켜보면 마라톤이 왜 굳이 지분을 5% 밑으로 던져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는다. 그래프테크는 시장의 일반적인 개인 주주가 거의 없는 기업이다. 주주 명부의 대부분은 패시브 펀드, 헤지펀드, 경쟁사, 행동주의 주주, 그리고 패밀리 투자 법인과 같이 각기 다른 목적과 정교한 셈법을 가진 대형 기관들로 포진해 있다. 이러한 주주 구성은 특정 채권자 하나가 독단적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휘두르거나 판을 흔들기 어렵게 만드는 방어벽 역할을 한다.

더욱이 자본 구조 측면에서도 마라톤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주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프테크는 이미 2028년 만기 예정이던 채권을 2029년 12월로 이월시키는 데 성공했다. 만기가 뒤로 밀렸다는 것은 채권자가 당장 기한이익상실을 선언하며 회사를 코너로 몰아넣기 어렵다는 뜻이다. 씨드리프트 출자전환과 같은 극단적인 압박 카드를 지금의 그래프테크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마라톤의 지분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만한 10% 선을 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차라리 기존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처럼 보인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에서 마라톤의 의도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주주와 채권자라는 이중적 지위가 초래하는 법적 리스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채권자와 주주는 본질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채권자는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더라도 자신의 원리금을 회수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반면 주주는 채권자에게 자산이 넘어가는 것을 막고 주주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 마라톤이 그래프테크의 주요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린 상태에서 채권자의 권리를 강하게 행사한다면, 이는 다른 대형 기관 주주들이나 행동주의 주주들에게 법적 소송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특히 그래프테크처럼 뼈저린 이해관계를 가진 대형 기관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는 수탁자 책임 위반이나 이해상충 문제가 언제든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마라톤이 향후 채권자로서 기업 구조조정이나 자산 매각 등을 강하게 요구할 때, 주요 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면 ‘자신의 채권 회수 이익을 위해 주주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공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분을 5% 미만으로 낮춰 공식적인 주요 주주 지위에서 내려오는 것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소송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고도의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요 주주라는 명표를 떼어내야만 채권자로서 철저하게 비정하고 공격적인 권리 행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이것도 사실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함—이런 생각이 있었으면 애초에 25년에 대규모 지분 매수하면 안 됐음).

또 다른 현실적인 배경으로는 CVC 캡탈 파트너스가 마라톤 에셋 매니지먼트를 인수한 배경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마라톤의 내부 결정권자가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거대 사모펀드 체제 하로 편입되면서 내부적인 자산 평가 기준이나 리스크 관리 지침에는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모펀드 체제 하에서는 자산의 유동성과 규제 리스크 관리가 더욱 엄격하게 요구된다. 지분율이 5% 아래로 내려가면 지분 매매 시마다 발생하던 실시간 공시 의무가 완전히 사라진다. 이는 시장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남은 지분을 언제든지 전량 매각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시 의무의 소멸은 마라톤에게 완전한 엑시트의 자유를 부여한다. 그래프테크의 주식 시장 내 유동성을 고려할 때, 주요 주주의 지분 매각 공시는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자산 가치를 스스로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5% 미만으로 지분을 줄여놓은 상태에서는 시장의 눈을 피해 조용히 지분을 처분하여 현금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당장 기한이익상실을 유도하여 씨드리프트와 같은 출자전환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면, 주식 시장에서의 지분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조용히 정리하고 오직 자본 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채권자로서의 우선변제권에만 집중하겠다는 실리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과의 물밑 협상에서 심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이어진다. 그래프테크의 채권 만기가 2029년으로 연장되었다고 해서 회사의 근본적인 현금 흐름 문제나 업황의 주기적 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주주 명부에 포진한 헤지펀드들과 행동주의 주주들은 마라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마라톤이 지분을 5% 미만으로 던진 행위는 시장과 회사 경영진에게 ‘우리는 주주로서의 미련을 버렸으며 오직 채권자로서 원금 회수에만 전념하겠다’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주주로서의 이익 공유를 포기하고 철저한 채권자의 스탠스로 돌아서겠다는 선언은 회사 경영진에게 향후 리파이낸싱이나 추가 자금 조달 시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PS – 이 또한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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