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린란드 문제로 인해 유럽과 미국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있다. 여기에 덴마크가 미국채 일부를 매각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언론과 시장에서는 ‘유럽이 미국 자산을 판다’는 식의 서사가 등장하고 있다. 이를 ‘유럽의 미국 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실제 이 표현이 함축하는 내용과 현실적 가능성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시장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유럽이 가지고 있는 미국채를 던져 미국에게 압박을 주고, 미국은 자본시장에서 타격을 받아 재조정되며, 글로벌 자본질서가 변화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 서사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한다. 유럽이 미국과 대등한 금융전쟁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 미국을 셀한다고 표현할 때 사용되는 자산의 대부분은 미국채다. 유럽이 보유한 미국채 규모는 상당하다. 각 금융기관과 중앙은행을 합친 규모는 수천억 달러 단위로 계산된다. 표면적으로 생각하면, 이 규모의 채권을 시장에 던지는 행위는 미국의 국채금리, 달러 유동성, 자본비용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미국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이런 수준까지는 맞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본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타격과 반타격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유럽이 미국채를 매도하는 순간, 미국이 받는 충격보다 유럽이 받는 충격이 더 크다. 이유는 유럽 금융시스템이 담보·레버리지·결제·은행 구조로 연결된 소비 중심 금융구조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금융은 미국처럼 시장 중심이 아니라 은행 중심 구조다. 은행 중심 금융은 담보 평가와 레버리지 비율이 실물경제로 직결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국채가 글로벌 담보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 국채 매도는 담보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담보가치 하락은 은행 대출 축소와 신용 경색으로 이어진다. 신용 축소는 상품 소비와 산업 수요 감소에 연결되고, 이는 유럽 실물경제의 침체 신호로 직결된다. 반대로 미국은 시장 중심 금융 구조이기 때문에, 충격이 흡수될 경로가 넓고 분산되어 있다. 충격이 미국채 금리로만 흘러갈 것이라는 단순 도식은 금융공학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유럽이 미국을 셀할 수 있다는 가정이 유럽이 미국 없이 생존 가능한 체제라는 가정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유럽은 에너지·안보·기술·AI·인재·해군·반도체·결제·금융규제·산업·식량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다. 미국이 유럽을 완전히 필요로 하는 구조가 아니라, 유럽이 미국에 의존하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언제나 미국과 중국을 경쟁자로 보지만, 유럽은 경쟁자가 아니라 소비자 시장에 가깝다. 소비자의 무기는 생산자가 가진 무기와 다르다. 유럽은 규제·의견·체면·협상력 같은 연성 무기를 쓸 수 있지만, 금융전쟁이나 안보·해양·결제·기술 전쟁은 불가능하다.
유럽이 미국을 셀할 수 있는 최대 강도는 신호 혹은 반박 수준이다. 미국채 매도 의사를 던지거나, 실제로 극히 일부를 시장에 흘리는 정도는 가능하다. 이런 움직임은 정치적 메시지나 신호로 기능한다. 하지만 전면전 수준으로 가는 순간 유럽은 체제 충격을 받는다. 전면 매도라는 개념은 대등한 전쟁의 이미지이지만, 실제로는 상호파괴가 아니라 비대칭 자멸로 끝난다. 유럽 금융이 받는 충격은 실물 수준으로 확장되고, 실물 수준의 충격은 복지·인구·부채 구조가 겹쳐 체제 리스크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조절 장치가 많다. 이 차이는 단순한 투기나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 자체의 구조 차이에서 발생한다.
유럽이 미국을 셀한다고 말할 때 더 흥미로운 질문은 유럽이 그 대가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이다. 미국채 매도가 미국을 굴복시키거나 정책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린란드 사안에서처럼 유럽이나 덴마크가 미국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미국은 해군·자산·기술·안보·산업·에너지·북극항로 같은 실물적 자원을 얻고, 유럽은 항의·비판·체면·발언권 정도를 얻는다. 유럽이 얻을 수 있는 실질적 보상은 미국으로부터 안보다. 안보는 유럽에게 필수재다. 유럽은 독립된 안보 주체가 아니다. 러시아가 서쪽으로 확장하고, 중동 불안정성이 존재하고, 중국이 기술·해군·에너지·무역 체계를 재편하는 시점에서 유럽이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 옵션은 미국과의 동맹 유지뿐이다. 미국이 유럽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소비시장과 외교적 정렬 정도에 불과하지만, 유럽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생존이다.
따라서 ‘유럽의 미국 셀’이라는 주제는 시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금융전쟁의 신호가 아니라 협상과 체면, 신호와 반박 사이의 이벤트다. 전면적 금융전쟁으로 확대될 여지는 없고, 확대되는 순간 유럽이 붕괴한다. 유럽은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이며, 미국 없는 금융체계·에너지체계·안보체계·기술체계·무역체계를 구성할 수 없다. 이런 구조적 조건에서 미국채 매도는 실행 가능한 카드가 아니라 발언 가능한 카드에 가깝다. 즉, 시장에서 이야기되는 유럽의 미국 셀은 행동이 아니라 표현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으며, 실질적인 결론은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안보와 질서, 그리고 체제 안에서의 자리를 다시 구매하는 방식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PS – 가끔은 누가 이 시스템을 시작했고, 누가 여전히 그 시스템의 중심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물론, 그린란드를 먹겠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트럼프도 정상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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