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무너졌지만,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블랙스톤은 하강의 끝에서 다음 상승의 좌표를 찾고 있다.
1. 상업용 부동산 사이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은 근본적으로 신용, 금리, 유동성이라는 세 가지 축 위에서 움직인다. 이 세 요인이 서로 얽혀 자산 가치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신용이 팽창하고 금리가 낮을 때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자산 가치 상승이 가능하지만, 금리가 오르고 대출이 위축되면 시장 전체가 역풍을 맞는다. 지금의 시장은 이 세 축이 동시에 긴축 국면에 들어선 전형적인 조정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상업용 부동산은 단순한 경기 변동 이상의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원격근무 확산으로 인해 대도시 중심의 오피스 수요는 줄어들었고, 출퇴근 인구 감소는 인근 리테일과 서비스업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전통적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리테일 자산은 온라인 커머스의 확산으로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산업 구조가 디지털화되면서 데이터센터, 물류창고, 의료시설 같은 새로운 유형의 상업용 부동산은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즉, 상업용 부동산 전체로 보면 하강 사이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자산 유형 간 극명한 분화가 발생하고 있다. 오피스·리테일은 구조적으로 수요가 줄어드는 반면, 물류·데이터센터·헬스케어 부문은 구조적으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 전체를 단순히 ‘침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실질적으로는 재배분 국면에 가깝다. 기존 자산이 가치를 잃는 동안, 새로운 자산이 그 자리를 대체하며 다음 사이클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이다.
2. 블랙스톤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
최근 몇 달간 블랙스톤은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 우려가 있거나 리파이낸싱 압박이 커진 CRE(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 대출을 대거 매입했다. 대표적으로 2025년 상반기, 블랙스톤은 Atlantic Union Bankshares로부터 약 20억 달러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담보 대출 포트폴리오를 인수했고, 이어서 First Internet Bancorp로부터는 약 8억 7천만 달러 규모의 단일 임차인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매입했다. 이러한 거래는 모두 시장가 대비 할인된 가격으로 이루어졌으며, 담보 자산은 장기 임대계약이 체결되어 있어 현금흐름의 가시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3. 왜 채권을 매입한 것인가?
앞서 말했듯 현재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국면에 놓여 있다.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코로나19 이후의 수요 변화로 오피스 공실률은 20%를 넘어섰다. 여기에 2020~2021년 저금리 환경에서 대출을 받은 기업들의 부채가 2025~2026년 만기를 맞으면서 리파이낸싱 부담이 급격히 늘고 있다. 기존보다 두세 배 높은 금리로 자금을 다시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당수의 차입자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자금 조달 경색, 공실률 확대, 자산가치 하락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구조적 침체기에 들어섰다.
이런 환경에서 부동산을 직접 매입하는 것은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다. 가격 하락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고, 임대 수요의 회복도 불확실하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직접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도 시장 하단을 점유할 수 있는 방법이 채권 매입이다.
채권 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1) 하방 리스크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부동산을 직접 매입하면 자산 가격 하락분 전체를 감당해야 하지만, 채권 투자자는 담보 가치만큼의 안전판을 가진다. 예를 들어, 1억 달러 가치의 자산을 담보로 한 대출을 블랙스톤이 6천만 달러에 매입했다고 가정하면, 자산 가치가 20% 하락해도 여전히 담보가 남는다. 반면 자산을 직접 매입한 투자자는 하락분 전부를 손실로 떠안는다.
또한 2) 채권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한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채무자는 계약상 일정한 이자를 납부해야 하며, 금리가 높은 현재 환경에서는 쿠폰 수익률이 과거보다 크게 상승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정체되어 있어도 이자 수입이 꾸준히 발생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블랙스톤은 이를 통해 불확실한 시장에서도 일정한 수익을 창출하며, 동시에 미래 자산 확보의 선택지를 열어둔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3) 이 구조가 단순한 금융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블랙스톤의 CRE 채권 매입은 ‘Loan-to-own’, 즉 대출을 통한 자산 확보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채무자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블랙스톤은 담보 자산의 청구권을 확보한다. 이는 곧 미래의 소유권 전환 옵션을 내재한 투자 방식이다. 시장이 더 악화될수록 부실 채권을 통해 자산을 더 낮은 가격에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시장이 회복된다면 원리금 상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다. 블랙스톤이 ‘갚아도 이익, 못 갚아도 이익’이라는 구조를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전략은 과거 금융위기 시기의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블랙스톤은 부실화된 리츠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대량 매입하며 시장의 혼란을 기회로 삼았다. 이후 금리 인하와 유동성 확대 국면에서 해당 자산들의 가치가 회복되자, 블랙스톤은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며 부동산 시장의 절대 강자로 부상했다.
이번에도 같은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금리 상승기로 부동산 시장의 레버리지가 해체되고, 은행이 보유한 부실 대출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국면은 블랙스톤에게는 ‘다음 사이클의 진입점’을 미리 확보할 기회다. 그들은 자산을 직접 사지 않고, 그 자산 위에 얹힌 신용 구조를 먼저 사들이며, 부실화가 현실화될 경우 담보를 취득할 수 있는 유리한 법적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4. 비중 규모 관점
이번 블랙스톤의 대출 매입이 시장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규모 때문이 아니라 방향성 때문이다. 언론 보도만 보면 대규모 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블랙스톤 전체 포트폴리오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다. 시장 참여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금액이 아니라, 그들이 언제 움직이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시장을 탐색하고 있는가다.
현재 블랙스톤의 총 운용자산(AUM)은 약 1.1조 달러이며, 이 중 부동산 부문은 약 3,500억 달러 수준이다. 이번에 매입한 CRE 규모를 모두 합해도 약 3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된다. 단순 계산으로는 부동산 포트폴리오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자산 규모로 보면 미미하지만, 전략적 신호로서의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블랙스톤은 거대한 운용자산을 단번에 투입하지 않고, 매번 사이클 초입에 탐색적 자금을 활용해 시장을 시험한다. 이번 대출 매입은 그 실험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은 블랙스톤의 전형적인 사이클 투자 접근법과 일치한다. 과거에도 초기에 소규모 탐색적 거래를 진행하며 리스크를 측정했고, 이후 확신이 형성되면 자금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확대했다. 예를 들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처음에는 부실 채권을 소량 매입하며 시장의 밸류를 확인했고, 2011~2013년 사이 시장 회복이 가시화되자 본격적으로 리츠, 호텔, 물류 자산을 대규모로 인수했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확신을 갖고 움직이는 단계가 아니라, 불확실한 시장 속에서 리스크 대비 수익 구조를 미리 측정하고, 향후 가격 반등 국면에서 투입할 자본의 방향성을 결정하기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즉, 지금의 대출 매입은 ‘매수’라기보다 ‘관찰에 기반한 진입 테스트’에 가까워 보인다. 따라서 블랙스톤의 이번 CRE 채권 매입은 규모로 평가할 사안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전체 포트폴리오에 미미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다음 부동산 사이클을 겨냥한 사전 탐색적 투자 행동으로서 의미가 크다.
5. 옥석 가리기
상업용 부동산 내부에서 이미 명확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도심 중심부의 구형 오피스 빌딩은 공실률이 높고, 리모델링과 친환경 인증 비용이 커서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반면, 연구시설형 오피스나 의료시설, 그리고 데이터센터형 부지 등은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단순히 ‘빌딩’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는 자산이 다음 사이클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리테일 부문도 동일한 흐름을 보인다. 대형 쇼핑몰과 프리미엄 리테일은 구조적 침체에 빠졌지만, 근린형 상가나 일상 서비스 중심 리테일은 여전히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 패턴의 로컬화와 인구 이동 구조가 바뀌면서, 소규모 필수 소비 중심 리테일이 오히려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입지가 절대적이었지만, 지금은 용도의 유연성과 현금흐름의 지속성이 더 중요한 투자 판단 기준으로 바뀌었다.
블랙스톤은 이러한 자산 간 격차를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단순히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향후 산업 구조 전환에서 다시 쓸모가 생길 자산, 즉 재활성화 가능한 자산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로 전환 가능한 오피스, 의료시설로 전환 가능한 복합건물, 물류 인프라로 재개발할 수 있는 교외 부지 등이 대표적이다.
즉, 블랙스톤은 단순히 상업용 부동산의 ‘바닥’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사이클의 지배 구조를 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시장이 불안정한 지금은 건물을 사는 시점이 아니라, ‘어떤 건물을 다시 쓸 수 있을지’를 가려내는 시점이다. 그들이 집중하는 자산은 현재 가격이 싸다는 이유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 속에서도 기능적으로 재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은 자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블랙스톤 행보는 ‘투자’보다는 ‘사전 구조 설계’에 가깝다.
6. 마무리
현재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어둡다. 금리 부담은 완화되지 않았고, 공실률은 높으며, 리파이낸싱 시장은 경색되어 있다. 부실 채권 매각은 계속 이어지고, 대출 만기 연장은 제한적이다. 자본은 부동산보다 채권으로 이동하고 있고, 직접 자산을 매입하는 대형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이야기하기는 이르다. 수요의 구조가 변했고, 금융 환경은 여전히 긴축적이며, 자산의 질적 분화는 심화되고 있다. 블랙스톤의 이번 투자 행보는 확신의 표현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다음 사이클을 준비하는 전략적 탐색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당분간 침체 구간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이 혼란 속에서 시장의 구조가 다시 짜이고 있다. 블랙스톤은 그 재편의 방향을 미리 읽으려 하고 있으며, 지금의 대출 매입은 그 긴 전환의 서막에 시작점인 것 같다.
PS – 주식 투자보다 부동산 투자가 쉽다고 말하던데, 필자는 부동산 투자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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