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갈등을 거시적인 합리성과 손익 계산 중심으로만 접근했던 필자의 과거 예측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 대치 국면 앞에서 빗나갔다. 당시 사태가 조기에 종결될 것이며 해협 봉쇄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단정했던 바탕에는 두 가지 강력한 전제가 있었다: 1) 글로벌 경제 체제가 원유 수송의 핵심 동맥이 막히는 파국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고, 2) 제해권과 제공권을 이미 미국이 완벽하게 장악한 현대전의 조건 속에서 이란이 자멸에 가까운 봉쇄를 오래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현재 전개되는 쌍방 봉쇄라는 독특한 교착 상태는 이러한 군사적 상식을 깨부수며 전혀 다른 경로로 흘러가고 있다.
필자가 예측에 실패한 본질적인 원인은 갈등 당사자들이 처한 환경과 그로 인해 재편된 게임의 문법을 오독한 데 있다. 통상적인 게임이론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이 상호 협력하여 해협을 개방하고 제재를 완화할 때 전체 파이가 가장 커지는 최적의 시나리오가 도출된다. 하지만 이란 지도부에게 이 판은 국익 극대화를 위한 주사위 굴리기가 아니라 체제의 사활을 건 생존 투쟁이었다. 개전 초기 최고지도자 부재라는 치명적인 전력 손실을 입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란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마지막 인질극의 카드로 삼았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 앞에서도 비대칭 전술을 무기로 끝까지 버티는 변칙적인 행보를 필자의 예측 모델이 담아내지 못했던 셈이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인 봉쇄 현황은 정규전 시기보다 더 정교하고 고착화된 형태로 고통을 가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대규모 함대를 동원하는 정면대결을 철저히 회피하는 대신, 해협 내 가장 좁은 영해 길목을 중심으로 저비용 자폭 드론 기지와 기동성이 뛰어난 소형 고속정 편대를 촘촘히 배치했다. 이들은 모든 민간 유조선을 무차별 공격하기보다 특정 국적이나 특정 정유사 소속 선박을 저격해 무선 경고를 보내거나 기습 나포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해상 교통로 전체에 상시적인 불확실성을 주입하고 있다.
이러한 게릴라식 교란과 물리적 손상을 가하는 해상 지뢰 매설이 병행되면서 해상 물류의 실핏줄인 해운 보험 시스템이 먼저 무너졌다. 런던 로이즈를 비롯한 글로벌 재보험사들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 선박에 대한 전쟁 위험 특별 담보 제공을 무기한 중단하면서 선박 전쟁 위험 특별 담보가 취소되고, 보험료가 천문학적으로 치솟으면서 해운사들이 실질적인 운항 불능 상태에 직면했다. 해운사들은 미군의 호위를 받더라도 보험 혜택 없이는 해협 진입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형 유조선의 통행량이 평시 대비 90% 이상 급감한 유령 해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해협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가로막지 않고도 전 세계 물류를 마비시키는 기능적 봉쇄 현황이 지속되는 배경이다.
이에 맞서 미국의 역봉쇄 조치 역시 이란 경제의 전면적인 질식사를 목표로 빈틈없이 가동되고 있다. 미국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 진입을 강행해 이란과 직접 충돌하는 리스크를 피하는 대신, 이란의 핵심 외화 수입원인 반다르아바스 항을 비롯한 주요 무역항 외곽에 유도탄 구축함과 무인 해상 드론을 대거 배치해 실전 봉쇄망을 치고 있다. 이 역봉쇄는 이란으로 들어오는 생필품과 산업 자재는 물론, 밤을 틈타 불법 밀수출되는 잔여 원유의 이동 경로까지 완벽히 차단하는 구조다. 최근 미군이 봉쇄선을 돌파하려던 제3국적 민간 화물선에 정밀 경고 사격을 가한 사건은 현재의 휴전이 종전이 아닌, 언제든 전면전으로 재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이란 내부의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솟았고 가용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란 지도부는 오히려 내부 체제 단속을 위해 해협의 빗장을 더 단단히 걸어 잠그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현황은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못해 생긴 일시적 교착이 아니라, 양측 모두가 정면충돌의 파멸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정밀하게 선택한 통제된 소모전의 결과물이다. 이란은 해협을 쥔 채 체제의 마지막 생명줄을 지켜내고 있고, 미국은 항구 봉쇄를 통해 이란의 손발을 묶은 채 장기적으로 말려 죽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독한 물류 마비와 글로벌 에너지 위기라는 막대한 외부 비용을 전 세계에 전가하면서도,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내구력을 증명하기 위해 이 기형적인 대치 체제를 가장 안전한 수단으로 묵인하고 있다.
이 기형적인 균형을 뒤흔드는 가장 불안정한 실질적 변수는 여전히 이스라엘인 것 같다. 필자가 예측을 실패했던 지점과 맞물려, 이스라엘이라는 변수가 만들어내는 현재의 균형 파괴력은 네타냐후 총리 개인의 정치적 수명 연장이라는 단편적인 동기를 넘어 훨씬 더 다층적이고 구조적인 복잡성을 띠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단순히 방어적 차원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지속된 중동의 안보 지형 자체를 자국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하겠다는 거대한 전략적 대전환을 강행하는 중이다. 이러한 거시적 목표와 정교한 군사적 계산들이 얽혀 있기에, 미국과 이란의 쌍방 봉쇄 체제는 이스라엘에 의해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는 취약한 구조에 놓여 있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복잡한 축은 이스라엘 국가 안보의 생존 패러다임 변화다.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가자지구 침공 사태 이후, 자국을 둘러싼 이란 중심의 저항의 축, 즉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시리아 내 친이란 파벌들이 형성한 이른바 ‘불의 반지’ 세력과 상시적인 다면전을 치러왔다. 이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맺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쌍방 봉쇄라는 교착 상태로 타협하는 것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목을 죄고 있는 저항의 축 세력들에게 재정비와 재무장의 시간을 벌어주는 최악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군부와 정보 당국은 이란이 해협 봉쇄에 자원을 집중하느라 전력이 분산된 지금이야말로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완벽히 궤멸시키고 이란의 핵 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전략적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 내부의 연정 구조와 극우 세력의 결집이라는 복잡한 정치 공학이 군사 행동의 가속페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네타냐후 정부를 지탱하는 핵심 축은 단순한 보수파가 아니라,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전면적 합병과 강력한 유대인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극우 연정 파트너들이다. 이들은 어설픈 휴전이나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는 대치 국면이 지속될 경우 당장 연정을 탈퇴해 정부를 붕괴시키겠다고 네타냐후를 압박하고 있다. 즉, 대이란 강경 노선은 총리 개인의 부패 재판 회피용 카드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우파 진영 전체가 수십 년간 열망해 온 중동 내 절대적 생존권 확보라는 이념적 목표와 결부되어 있다. 내부 여론 역시 장기간 지속된 미사일 위협과 피로감으로 인해, 어설픈 평화보다 이번 기회에 위협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강경론이 압도적인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더욱 뼈아픈 맥락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동 통제력을 역으로 이용하는 정교한 외교적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유가 안정과 중동 전면전 회피를 위해 이란과의 쌍방 봉쇄라는 관리 가능한 소모전을 원하지만, 이스라엘은 미국이 결국 자신들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동맹의 절대적 비대칭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만류를 무시하고 레바논 베이루트를 공습하거나 이란 본토의 자산을 타격하더라도, 미국은 이란이 이스라엘에 전면적인 보복을 가할 때 자국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미국의 안보 공약을 지렛대 삼아, 자신들이 판을 흔들면 미국이 뒤를 수습하러 끌려 들어올 수밖에 없는 외교적 구도를 역이용하고 있다.
필자의 예측은 비록 틀렸지만, 파국을 거부하는 글로벌 시스템의 복원력과 지속 불가능한 비용에 대한 계산이 종국에는 이 사태를 해결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종결의 방식은 과거에 기대했던 깔끔한 평화 조약보다는 서로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리를 챙기는 기형적이고 불완전한 물밑 타협의 형태를 띨 확률이 높아 보인다.
PS – 누군가는 글 작성 이후 휴전 이야기가 나왔고, 실재했으므로 예측이 맞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필자가 생각했을 땐 이 예측은 크게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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