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공급망을 다시 짜고 있고, 미국은 동맹국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 2025년 7월 31일 새로운 관세 협정이 맺어졌으나, 투자 규모 및 외환 보유액 이슈로 인해 기존 협정 내용을 수정하는 재협상이 시작되었다.
- 2025년 10월 29일 APEC 기간 중 협상은 타결되었으며, 아래 내용은 새로운 관세 협정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1. 미국·한국 관세 협정 내용
2025년 하반기 발표된 한미 통상·관세 협정은 7월 31일 1차 무역합의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재조정 결과다. 7월 협정은 자동차·부품 관세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한국 측이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제공한다는 조건을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협정은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공급망 동맹’ 구상과 한국의 대미 수출 안정화 전략이 맞물리며 신속히 체결되었으나, 자금 집행 구조가 비현실적이었다. 전액 현금 기반으로, 단기간 일괄 집행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한국 외환시장과 금융시스템에 큰 부담을 예고했다. 외환보유액 대비 80%에 달하는 규모의 외화 유출이 단기 집중될 경우, 원화 급락과 금리 급등, 국가신용등급 하락 위험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었다. 재무부와 한국은행은 실제로 8월 중순 경고성 브리핑을 내며, 협정의 ‘지급 방식 조정 필요성’을 미국 측에 공식 전달했고, 10월 협정은 7월 합의를 그대로 시행하기보다 관세 완화 조항을 유지하되, 투자 집행 방식과 속도를 전면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다시 체결됐다.
관세 부문만 놓고 보면, 핵심 내용은 동일하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이는 일본산 수입차에 적용되는 세율과 동일하며, 한국 완성차 업체의 대미 수출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기업뿐 아니라 배터리, 내장재, 반도체 부품 등 전후방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한 항공기 부품과 제네릭 의약품은 무관세 품목으로 지정되었고, 목재·화학소재·기계류는 최저세율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 다만 철강·알루미늄·석유화학 등 기초소재 부문은 보호무역 기조에 따라 여전히 높은 관세가 유지된다.
2. 수정된 3,500억 달러 규모의 패키지
10월 재협정에서는 3,500억 달러 규모의 패키지 투자 구조가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 1) 연간 투자 상한선을 200억 달러로 제한해 15~20년 단위로 분할 투자하는 장기형 구조로 변경되었다. 2) 전액 현금 지급 대신, 절반 이상을 자산·설비·기술 협력의 형태로 대체하기로 했다. 즉, 단순 송금형 투자가 아니라, 미국 내 조선소·배터리 공장·전력망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면서 투자금을 분산시키는 구조다. 3) 기존에는 미 정부가 관세 인하 철회를 조건으로 담보를 요구했지만, 이번 재협정에서는 일부 품목에 한정해 담보 의무가 해제되었다.
이로써 외환시장 충격은 크게 줄었고, 한국 내 환율 불안도 일단 진정됐다. 10월 재협정은 실질적으로 한국의 거시경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어적 수정’이었다. 다만 여전히 3,500억 달러라는 총액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투자 약속의 상징적 총량’으로 남겨두되, 실제 집행은 프로젝트별로 장기 분할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상징적 금액은 그대로 두고, 실물 집행은 유연화하는 절충안이다.
이 수정안은 미국 측에도 이익이 있다. 즉각적인 현금 유입은 줄어들지만, 한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 기간이 장기화됨으로써 고용과 생산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핵추진 잠수함
이번 재협정의 또 다른 핵심은 핵추진 잠수함(SSN) 기술 이전 허용이다. 미국 대통령은 공식 성명을 통해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AUKUS(미·영·호) 협정을 통해 호주에 제공한 기술을, 두 번째로 타국에 이전하는 사례다.
핵추진 잠수함은 핵무기 탑재용이 아니라, 핵연료로 추진하는 잠항 플랫폼이다. 한 번의 연료 주입으로 수개월 이상 작전이 가능하며, 재급유 없이 장기 잠항이 가능하다. 한국 해군은 기존 디젤잠수함 체계로는 장거리 억제·추적 임무 수행에 제약이 있어, 핵추진체계 확보를 오랫동안 추진해왔다.
미국이 이번에 기술이전을 허용한 배경에는 동북아 전략 변화가 있다. 중국의 해양진출, 북한의 SLBM 개발, 러시아의 극동 해군 증강 등이 맞물리며, 미국은 한국을 ‘해양 억제망’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기술이전의 구체 범위는 제한적이다. 핵연료의 농축·재처리 기술, 원자로 설계도 등은 여전히 미국 통제 아래 있으며, 한국은 추진체계·선체설계·냉각시스템 등의 일부 기술에 접근하게 된다. 잠수함 건조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리 조선소(한화오션)를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4. 리스크 및 유의사항
1) 이번 재협정은 정상 간 정치적 합의 형태로 발표되었지만, 실제 효력을 갖추려면 양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 특히 핵잠수함 기술이전과 관련해서는 기존 한미 원자력협정의 조항 수정이 필수적이다. 미국 의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2)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는 NPT 체제 내에서 새로운 논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일본이 군사적 균형을 이유로 대응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고, 북한은 이를 빌미로 핵무력 고도화를 정당화할 수 있다.
3) 비록 투자집행 속도가 완화되었더라도, 총액 3,500억 달러는 장기적으로 외환유출 압력을 지속적으로 유발한다. 연간 200억 달러 수준의 투자만으로도 경상수지와 외화보유액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미국 금리 수준이 장기간 높게 유지될 경우, 달러 조달 비용이 상승하면서 투자 수익률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4) 관세 완화의 직접적 수혜는 자동차·부품 등 일부 산업에 집중되고, 철강·소재·화학 부문은 여전히 높은 장벽에 묶여 있다. 산업 전반의 수익성 개선보다는 구조적 재편 압박이 더 크다.
5) 한국이 미국 중심의 경제·군사체계에 더 깊이 편입되면서, 전략적 자율성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협정은 실질적으로 한미동맹의 ‘경제적 확장판’이며, 이에 따른 정치적 논쟁은 향후 계속될 것이다.
5. 마무리
단순히 WTO 체제의 자유무역 원칙에서 보면 이번 협정은 불균형하게 보일 수도 있다. 관세 인하가 투자 약속과 직접 맞물린 ‘거래형 협상’이라는 점에서, 자유무역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현실의 무역 질서는 이미 다자주의에서 벗어나, 정치·안보·산업이 결합된 양자주의 거래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과 맺은 협정의 사례를 보면, 관세 완화와 투자 약속을 교환하는 형태는 이제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그 기준에서 본다면 이번 한미 재협정은 상대적으로 좋은 협정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방어하면서도 관세 완화와 전략기술 협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투자 조건은 현실적으로 조정되었고, 산업·안보 양면에서 협력 폭이 넓어졌다. 즉, 이번 협정은 완벽하지 않지만, 달라진 시대의 통상 질서 안에서 선택 가능한 최선의 타협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협정이 시장에서 실질적 경쟁력과 안보 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그 결과를 국내 산업 구조 개선과 금융 안정으로 연결시키는 일이다.
PS – 세상을 정확히 보기 위해선 좌우가 아닌, 가운데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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