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잘하는 사람을 가만히 관찰하면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빠르게 수읽기를 하는 능력, 장기적 형세 판단, 한두 점의 손해를 감수하고 전체 판세를 좋게 만드는 사고, 상대의 의도 추적, 확률과 인과 관계를 동시에 고려하는 습관 등이다. 이런 특성은 주식 투자에서도 반복적으로 요구된다. 다만 바둑이 전부를 설명하진 못하고, 투자라는 영역은 다른 게임보다 더 많은 불확실성과 감정, 제도적 요인, 산업적 현실이 개입되기 때문에 완벽한 대응관계가 생기진 않는다. 다만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바둑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국면의 형태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같은 모양이라도 주변 형세나 쌓여 있는 집의 크기, 전투의 위치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주식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같은 실적 발표라도 업황이 확장기인지 수축기인지, 경쟁사의 투자 사이클이 어느 구간인지, 금리와 유동성 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같은 숫자가 전혀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 바둑이 상대와 상황을 함께 본다면, 투자는 시장과 산업이라는 외부 요인을 통해 같은 모양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구조적 유사성을 가진다.
바둑은 국지전의 승패보다 전체 판세가 더 중요하다. 초반에 몇 집 앞서도 중반 대전에서 무너지면 끝이고, 후반 끝내기에서 몇 집을 더 벌어도 전체 형세가 나쁘면 이길 수 없다. 투자는 더욱 그렇다. 특정 분기의 이익이 좋아도 산업 구조가 장기적으로 무너지는 국면이라면 프리미엄이 붙기 어렵고, 반대로 단기 실적이 좋지 않아도 구조가 개선되는 산업이면 시장은 먼저 자본을 배정한다. 바둑의 국면 전환과 투자의 사이클 전환은 시간축이 다르지만 작동 방식이 유사하다.
이기려면 싸우는 곳과 피해야 할 곳을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같다. 바둑에서 불리한 싸움을 억지로 이어가면 손실이 커진다. 투자에서도 자신이 모르는 영역을 억지로 예측하려 하면 손실을 본다. 바둑에서 ‘두터움’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미래에 쓸 수 있는 잠재적 자원을 뜻한다. 투자의 두터움은 자본력, 경쟁력, 기술력, 구조적 진입장벽 등과 비슷하다. 두터움이 있는 기업은 단기 실적이 나빠도 버티고 회복한다. 두터움 없는 기업은 이익이 나더라도 유지되지 않는다.
의도를 읽는 과정도 흥미롭다. 바둑에서 상대의 수는 대부분 목적을 가진다. 당장 손해보는 수라도 다음 수에서 교환이 발생하거나 전장을 이동시키려는 의도일 수 있다. 투자에서도 시장의 가격 움직임은 의도를 내포할 때가 있다. 단순히 올라서 좋고 내려서 나쁜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논리로 움직였는지 파악해야 할 때가 많다. 큰손의 포지션 청산, 빠른 자금의 스위칭, 알고리즘의 조건 반응, 업황 논리에 따른 선행 자본 배치 등은 의도 분석을 필요로 한다.
바둑을 오래 둔 사람은 손익 계산이 빠르다. 몇 집을 잃고 몇 집을 얻는지 감으로 계산한다. 투자는 숫자 계산이 더 직접적이지만 역시 간단한 산술을 빠르게 돌려야 한다. 매출과 이익, 마진과 ROIC, 밸류에이션과 성장률, 금리와 WACC 등이 서로 연결되는데, 이를 빠르게 감각화할 수 있어야 한다. 바둑의 형세 판단과 투자의 밸류 판단은 모두 수십 개의 작은 요소를 합산해 하나의 숫자로 수렴시키는 과정이다.
다만 바둑과 투자의 결정적인 차이는 불확실성의 성격에 있다. 바둑은 완전 정보 게임이다. 숨겨진 카드가 없고 보드 위에 모든 정보가 드러나 있다. 투자 시장은 반대로 정보가 비대칭적이고, 심지어 정보가 늦게 도착한다. 산업의 역학, 기술 변화, 공급망 구조, 정책 신호, 경쟁 전략, 자본 이동, 사이클, 수급, 감정, 우발적 사건까지 모두 겹쳐서 판을 만든다. 바둑이 인과 중심이라면 투자는 인과와 우연이 섞인 확률 게임에 가깝다. 이 지점 때문에 바둑 실력이 곧바로 투자 실력으로 변환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바둑은 장기 전망에 능한 사람을 키운다. 초반 수십 수가 중반의 전투를 좌우하고, 중반의 선택이 후반 끝내기의 집수로 귀결된다. 투자는 더 길다. 수년 단위의 업황, 수십 년 단위의 산업 구조, 인구와 정책, 자본 비용과 기술 변화가 결합한다. 미래가 지금의 선택으로 연결된다는 구조를 받아들이는 데에 바둑의 시간 감각이 유리하다.
손절 개념에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바둑에서 약한 돌을 무리하게 살리려다 계가에서 더 큰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죽여놓고 바깥에서 두터움을 쌓는 편이 이득이다. 투자에서도 특정 종목이나 산업에 대한 집착이 손실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손절은 체념이 아니라 국면 전환이고, 자원을 더 높은 기대값에 재배치하는 과정이다.
바둑은 감정 관리가 핵심이다. 한 번 큰 패배를 당하면 다음 전투에서 감정적으로 과투자하는 경우가 흔하다. 투자에서도 큰 손실 이후 무리한 복구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바둑에서는 감정이 실력을 갉아먹고, 투자에서는 감정이 자본을 갉아먹는다.
반대로 투자에서 바둑과 다른 영역은 정보의 폭과 깊이가 훨씬 넓다는 점이다. 바둑판 위에는 흑과 백밖에 없지만 투자판 위에는 수십 개 산업, 수백 개 기업, 수천 개 변수, 수십 년의 정책 변화, 글로벌 자본 흐름, 기술 추세가 얽혀 있다. 바둑은 계산과 판단의 게임이고, 투자는 계산과 판단과 정보 수집과 체계 이해의 게임이다. 즉 바둑은 한 번 판을 짜면 끝까지 유지되지만 투자는 판이 계속 바뀐다.
그럼에도 결국 둘 다 판단과 의사 결정의 게임이다. 불완전한 정보를 기반으로 더 나은 기대값을 선택하는 과정이며, 장기적으로는 정답이 존재한다. 단기 이벤트를 따라다니는 것보다 구조를 보는 것이 유리하다. 싸움을 잘하기보다 싸울 곳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손해를 감수하고 큰 기대값을 확보하는 것이 승률을 높인다. 어느 영역이든 욕심과 집착은 성과를 망친다.
이러한 상관 관계 때문에 체스나 포커보다 바둑이 투자와 더 가깝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포커는 정보 비대칭과 심리전이 강하고, 체스는 연산과 최적화에 강하다. 바둑은 구조·공간·시간·인과·심리를 동시에 고려하는 게임이다. 투자는 세 영역이 모두 혼합된 영역이기 때문에 바둑적 사고가 들어갈 공간이 많다.
다만 투자에는 바둑에 없는 요소가 하나 더 붙는다. 자본 배분이라는 문제다. 바둑은 한 판, 한 상대, 하나의 목표지만, 투자는 수십 개 종목과 산업과 시장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바둑에서 형세 판단이 투자에서 포트폴리오 구성으로 확장되는 지점에서 차이가 생긴다. 바둑이 단일 합리성의 게임이라면 투자는 다중 합리성과 다중 최적화의 게임이다.
종합하면 바둑은 투자자에게 몇 가지 유용한 사고 습관을 제공한다. 구조적 판단, 장기 관점, 손익 계산, 의도 추적, 두터움 개념, 감정 관리, 국면 전환, 기대값 추구 등이다. 반대로 투자 경험은 바둑 플레이어에게 결과의 불확실성, 정보 비대칭, 시장 심리, 사이클, 제도적 변수, 우연성을 이해하는 감각을 제공할 수 있다. 둘은 동일한 게임은 아니지만 서로의 사고 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상관 관계를 가진다.
PS – 바둑적 사고가 적용하기 가장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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