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 합의(Ⅰ, Ⅱ, Ⅲ), 위기를 거울삼아 진화한 국제 은행 규제

금융 규제(바젤 합의)는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위기를 통해 드러난 허점을 메우는 임시방편의 연속이다.

1. 국제 금융 규제의 필요성과 바젤 합의

은행은 예금자의 돈을 받아 대출과 투자를 통해 이익을 낸다. 그러나 만약 은행이 갑자기 손실을 크게 보거나 예금자가 동시에 돈을 찾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은행은 보유한 현금보다 더 많은 요구를 맞추지 못하고 도산할 수 있다. 실제로 1970~80년대 국제 금융시장은 큰 위기를 여러 번 겪었다. 멕시코 등 신흥국 부채 위기, 미국과 유럽 은행의 연쇄 파산 위협이 대표적이다.

국경을 넘어 거래하는 금융이 늘어나자 특정 국가만의 규제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에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모여 ‘바젤 은행감독위원회(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 BCBS)’를 만들었고, 국제적으로 통일된 규제(바젤 합의)를 마련하게 되었다.

2. 바젤 Ⅰ

1988년에 도입된 바젤 Ⅰ의 핵심은 은행이 대출과 투자를 할 때 위험을 고려하여 일정 수준의 자기자본을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단순히 예를 들면, 은행이 기업에 100억 원을 빌려주려 할 때 그 기업이 파산할 위험이 높다면 은행도 손실에 대비해 자기 돈을 일정 비율로 묶어둬야 한다. 이렇게 해야 위기 상황에서도 은행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예금자를 보호할 수 있다.

바젤 Ⅰ은 위험가중자산(Risk-Weighted Assets, RWA)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국채 같은 안전자산은 위험 가중치를 0%로 두고, 기업 대출은 100%를 적용했다. 그리고 은행은 RWA의 8% 이상을 자기자본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했다. 예를 들어 기업대출 100억 원을 실행하면 100억 × 100% = 100억 원이 위험가중자산이 되고, 은행은 최소 8억 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별도로 보유해야 했다.

문제는 이 기준이 너무 단순했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국채는 사실상 위험이 없다고 보았지만, 이후 현실은 달랐다. 유럽 재정위기 때 그리스 국채는 실제로 큰 손실을 가져왔지만 바젤 Ⅰ 체계에서는 여전히 0% 위험으로 분류되었다. 또 기업의 신용등급 차이를 반영하지 못해 고위험 기업과 비교적 안전한 기업 대출이 같은 위험도로 취급되었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이 실제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기보다는 규제를 맞추는 데 집중하게 만들었다.

3. 바젤 Ⅱ

이런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2004년 바젤 Ⅱ가 도입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은행의 자산 위험을 더 정교하게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한 점이다. 단순히 모든 기업대출을 같은 위험으로 취급하던 바젤 Ⅰ과 달리, 바젤 Ⅱ에서는 차주의 신용등급과 특성을 세밀하게 반영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접근법이 마련되었다. 하나는 국제 신용평가사의 등급을 그대로 활용하는 표준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모형을 만들어 차주의 부도확률과 손실률 등을 직접 추정하는 내부등급법이었다. 예컨대 AAA 등급 국채를 보유하면 위험가중치가 낮아지고, B 등급 기업대출은 훨씬 높은 위험가중치가 부여되는 식이다. 은행이 스스로 정교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도입할수록 규제자본 부담이 줄어드는 유인이 생겼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위험 범위가 확장된 점이다. 바젤 Ⅰ은 신용위험만 다뤘지만, 바젤 Ⅱ에서는 시장위험과 운영위험까지 규제에 포함시켰다. 시장위험은 주가나 금리, 환율의 급격한 변동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금리가 급등하면 채권 가격이 떨어져 은행이 손실을 입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이 위험 관리 범위에 들어갔다. 운영위험은 전산 장애, 내부 직원의 횡령, 절차상의 실수 등에서 생길 수 있는 손실을 뜻한다. 즉 은행이 단순히 고객이 돈을 못 갚는 상황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나 내부 운영 문제에서도 충분한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 잡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독과 시장 규율이 강조되었다. 단순히 숫자 기준을 충족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감독당국이 은행의 위험관리 체계를 직접 점검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했다. 동시에 은행들이 자본 적정성이나 위험 관리 상황을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투자자와 예금자들이 은행을 감시하는 기능을 작동시키려 했다.

예를 들어, 신용평가사에서 AAA 등급을 받은 기업 대출은 위험이 낮으니 위험가중치가 줄어들고, B 등급 이하의 기업 대출은 훨씬 더 높은 위험가중치가 적용되었다. 여기에 은행 스스로 차주의 부도확률이나 손실률을 계산하는 내부등급법을 도입하면, 자체적으로 정교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한 은행일수록 규제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젤 Ⅱ는 의도와 달리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우선 신용평가사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게 커졌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평가를 하기보다 신용등급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드러났다. 당시 신용평가사들은 실제로 부실한 주택담보부채증권(MBS)에까지 높은 등급을 부여했으며, 은행들은 그 결과를 신뢰하고 대규모로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떠안았다. 또한 내부등급법 같은 정교한 모형이 허용되면서 규제당국조차 은행의 위험 산정 과정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규제가 복잡해질수록 감독은 더 어려워지고, 은행이 위험을 축소하거나 왜곡할 여지가 커졌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4. 바젤 Ⅲ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바젤 Ⅱ의 취약점이 드러나자 2010년 바젤 Ⅲ가 만들어졌다. 바젤 Ⅲ는 단순히 위험가중자산 비율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 은행이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자본의 양뿐만 아니라 자본의 질, 그리고 자금 조달 구조의 안정성이 강조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자본 규제가 한층 강화되었다. 과거에는 보통주뿐 아니라 우선주나 전환사채 같은 보조 자본도 자기자본으로 인정해주었는데, 이는 위기 시 손실을 직접 흡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바젤 Ⅲ에서는 은행이 위기 상황에서도 바로 손실을 떠안을 수 있는 보통주 자본(Common Equity Tier 1)을 중심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단순히 숫자상의 8%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8%가 실제로 손실을 메울 수 있는 ‘진짜 자본’인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둘째, 레버리지 비율 규제가 새로 도입되었다. 이는 위험가중치를 적용하기 전 총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게 만든 규칙이다. 기존 규제에서는 위험가중치가 낮은 자산(예: 선진국 국채)을 많이 보유하면, 장부상으로는 자본 부담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금융위기 때는 ‘안전하다’던 자산조차도 갑작스레 가치를 잃으며 문제가 발생했다. 레버리지 비율 규제는 이런 허점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은행이 아무리 위험이 낮은 자산을 담더라도 최소한의 자기자본은 반드시 확보하게 만들었다.

셋째, 유동성 규제가 신설되었다. 위기 당시 많은 은행들이 장기 대출을 하면서도 단기 자금으로 조달하는 ‘만기 불일치’ 구조에 의존하다가, 자금시장이 멈추자 곧바로 위기에 빠졌다. 이를 막기 위해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이 도입되었다. 이는 앞으로 30일 동안 고객들이 돈을 찾아가거나 자금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계산하고, 이를 언제든 현금화 가능한 안전자산으로 미리 확보하도록 하는 규칙이다. 또 장기적으로도 안정적인 조달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이 마련되었다. 쉽게 말해 은행이 단기 차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장기 대출을 할 때는 장기 자금으로 뒷받침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5. 실제 적용 이후의 영향과 평가

바젤 Ⅰ은 국제 은행 규제의 최소 공통 분모로 기능했다. 이전까지는 각국이 제각각 규제를 운영했는데, 바젤 Ⅰ을 통해 최소한의 자기자본 기준을 통일함으로써 은행들의 규제 환경이 국제적으로 맞춰졌다. 예를 들어 일본 은행과 미국 은행이 같은 글로벌 기업에 대출할 때, 자기자본 규제가 다른 수준으로 적용되면 경쟁에서 불균형이 생길 수 있는데, 바젤 Ⅰ은 이를 일정 부분 해소했다. 다만 위험가중치 체계가 지나치게 단순해 실제 리스크를 세밀하게 반영하지 못했고, 은행들은 ‘8% 룰만 맞추면 된다’는 식으로 형식적 규제 충족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자본 규제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 안정성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젤 Ⅱ는 한층 정교함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지만, 이 정교함이 오히려 다른 취약점을 만들었다. 은행들이 신용평가사 등급이나 자체 내부모형을 근거로 위험을 평가할 수 있게 되면서, 겉으로는 정밀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신용평가사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내부모형을 복잡하게 설계해 감독당국조차 제대로 검증하기 어려워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부실 주택담보부채증권(MBS)이 높은 등급을 받은 채로 대거 거래되었고, 은행들은 그 평가를 신뢰해 투자에 나섰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바젤 Ⅱ 체계가 ‘리스크를 정확히 측정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위험을 은폐하고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뒤따른 이유다. 또한 규제가 복잡해지면서 은행들의 재무구조는 외부에서 더 불투명해졌고, 이는 시장의 감시 기능까지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바젤 Ⅲ는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자본의 질을 높이고 유동성 규제를 신설하면서 은행 시스템의 안정성을 강화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격히 불안정해졌지만, 주요 은행들은 바젤 Ⅲ 이후 쌓아둔 보통주 자본과 고유동성 자산 덕분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위기 충격이 실물경제로 바로 전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바젤 Ⅲ의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자본과 유동성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이 이전보다 대출 여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신흥국 은행의 경우, 규제 충족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이로 인해 신용 공급이 위축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대형 글로벌 은행은 규제를 충족할 능력이 충분하지만,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형 은행은 경쟁에서 더 불리해져 ‘대형은행 쏠림 현상’을 가속화한다고 본다. 또한 은행권이 위축되면 자금이 규제를 받지 않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으로 흘러들어가 오히려 새로운 리스크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6. 마무리

바젤 규제의 역사는 완벽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위기가 드러낸 허점을 보완하는 끝없는 조정의 연속이었다. 금융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을 안고 있어, 단 한 번의 위기로 모든 문제를 제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새로운 위기는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또 다른 바젤 규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먼 미래에 초지능이 모든 위험을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 한,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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