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크르자니크(Brian Krzanich)가 2013년 인텔 CEO 자리에 오른 뒤 퇴임한 2018년까지, 인텔은 여러 전략적 실패를 거듭하며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고, 이는 2025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10nm 공정 지연, 모바일 칩 시장 진출 실패, 사업 포트폴리오와 투자 방향의 변화, 조직문화 훼손, 그리고 이런 결정들이 남긴 장기적인 파장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정리해본다.
1. 10nm 공정 지연과 기술 리더십 상실
인텔은 오랫동안 미세공정 기술에서 업계 선두를 지켜왔지만, 크르자니크 시기 10nm 개발이 계속 지연되면서 기술 리더십을 내줬다.
14nm 공정은 2014년 상용화돼 좋은 평가를 받아, 크르자니크는 14nm가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보고 10nm 전환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 결과 인텔은 2014년부터 무려 6년 동안 14nm에 머물렀고, 10nm 기반 CPU를 2019년 말이 돼서야 제한적으로 출시했다. 당초 계획은 2016년 양산이었으나, 일정이 수차례 밀려 2018년 4월에는 공식적으로 2019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지연의 핵심 원인은 과도하게 높인 기술 목표와 새로운 제조 방식 도입 실패였다. 인텔은 10nm에서 트랜지스터 밀도를 전 세대보다 2.7배 높이고 성능을 25%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멀티패터닝(쿼드러플 패터닝)과 코발트 배선 같은 새로운 방식을 적극 도입했지만, 수율 악화와 제조 난이도 급등이라는 부작용을 불렀다. 게다가 크르자니크는 EUV 공정이 경제성이 낮다고 보고 ASML의 장비를 양산에 적용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인텔은 기존 DUV 멀티패터닝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경쟁사 대비 공정 전환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2018년 무렵 TSMC와 삼성전자가 이미 7nm 양산에 들어가며 인텔을 추월했다. TSMC는 애플 A12 칩 생산에 7nm를 적용했고, AMD는 TSMC 7nm 공정을 활용한 3세대 Ryzen과 EPYC 서버칩으로 인텔을 압박했다. 반면 인텔은 발열과 전력 효율 개선에 한계를 보였고, 제품 출시 주기도 늘어나 무어의 법칙에도 제동이 걸렸다.
2. 모바일 칩 시장 진출 실패
PC 시대를 지배했던 인텔은 모바일로 넘어가는 흐름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 인텔은 ARM 기반 프로세서 사업부(XScale)를 매각했고, 2007년 아이폰용 칩 공급 제안도 거절했다. 이 초기 실기를 만회하려고 크르자니크 시기에는 Atom 계열 저전력 x86 칩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013~2014년 모바일 사업부 적자만 75억 달러에 달했고, 인텔은 이를 감추기 위해 PC 사업부와 실적을 합산해 발표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칩 프로젝트는 연이어 취소됐고, 2016년에는 브록스턴(Broxton) 개발 중단과 함께 1만 2천 명 감원을 단행하며 스마트폰 AP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이 실패에는 저전력 설계 역량 부족, 소프트웨어 생태계 부재, 기술 선택 오류가 겹쳤다. 인텔은 한때 4G 표준으로 WiMAX를 LTE보다 우선시했고, 자체 OS 프로젝트인 모블린·미고도 실패했다. 결국 퀄컴, 애플, ARM 진영이 모바일 칩을 장악하는 동안 인텔은 발열과 전력 소모 문제로 경쟁력을 잃었다. 통신 모뎀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인수한 인피니언 모뎀 부문으로 애플 아이폰 LTE 모뎀을 공급했지만, 2019년 애플과 퀄컴이 화해하자 유일한 고객을 잃고 사업을 애플에 매각했다.
결국 인텔은 PC와 서버 성공에 안주한 채, 성장성이 높은 모바일 시장 대응에 실패했다. 수십억 달러를 쓰고도 스마트폰 프로세서 점유율은 사실상 0%로 끝났다.
3.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와 장기 투자 축소
크르자니크는 IoT, 데이터센터를 차세대 성장축으로 삼고 대규모 인수에 나섰다. FPGA 기업 알테라(2015년, 167억 달러), 자율주행 업체 모빌아이(2017년, 153억 달러), AI 칩 스타트업 너바나·무비디우스(2016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상업적 성과 없이 정리됐다. 너바나 기반 AI칩은 2019년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드론·웨어러블 사업도 시장 장악에 실패했다.
동시에 장기 설비투자와 R&D 비중은 줄었다. 인텔은 2011~2015년 R&D에 530억 달러, 설비투자에 500억 달러를 썼지만, 같은 기간 주주환원(자사주 매입 360억 달러, 배당 220억 달러)에 더 많은 현금을 썼다. 단기 수익성에 치중한 재무 중심 경영은 후임인 CFO 출신 밥 스완 시기 더 강화됐고, 낸드 사업(SK하이닉스 매각), 5G 모뎀 철수, 옵테인 메모리 중단으로 이어졌다.
결국 인텔은 신사업 도전에는 실패하고, 핵심 제조 공정과 아키텍처 혁신에 필요한 투자는 뒷전이 됐다.
4. 조직문화와 리더십 변화
인텔은 원래 엔지니어 중심 문화가 강했지만, 크르자니크 시기에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사실 그 이전 폴 오텔리니 CEO일 때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이었지만, 경영에서는 단기 수익과 효율성을 우선시했다. 이에 따라 기술 리더의 목소리가 약해지고 관료주의가 강화됐다는 불만이 나왔다.
2016년 전 세계 직원 11% 감원으로 고경력 엔지니어들이 대거 떠났고, 퀄컴 출신 외부 인사가 핵심 기술 조직을 맡으면서 내부 갈등이 생겼다. 크르자니크는 추진력은 있었지만 소통 부족과 일방적 결정 스타일로 비판받았다. 재임 말기에는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로 윤리 규정을 위반해 사임했는데, 이미 10nm 난항과 비전 부재로 리더십이 흔들리던 상황에서 신뢰까지 잃었다.
말보다 숫자만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엔지니어 사기와 혁신 의지가 떨어졌다. 결국 인텔은 2021년 팻 겔싱어를 CEO로 데려와 엔지니어 중심 문화를 되살리려 했지만, 이미 떠난 인재와 잃은 문화를 되돌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팻 겔싱어도 사임했다. 현재 인텔의 CEO는 립부 탄이다.)
5. 장기적 파장
AMD는 인텔의 공정 지연 덕분에 반등 기회를 잡았다. 2017년 Zen 아키텍처와 TSMC 7nm 공정을 활용해 더 많은 코어와 효율을 제공하는 Ryzen·EPYC 제품을 내놓았고, 서버 시장 점유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렸다.
TSMC는 인텔 쇠퇴의 최대 수혜자였다. 7nm, 5nm, 3nm로 앞서가며 애플·AMD·퀄컴을 고객으로 확보했고, 심지어 인텔의 일부 제품까지 위탁생산하게 됐다. 공격적인 시설투자와 EUV 조기 도입이 결정적이었다.
ARM 진영은 모바일에서 PC·서버로 세력을 확장했다. 애플은 2020년 M1 칩으로 맥 제품군을 ARM 기반으로 전환했고, 아마존·구글은 ARM 서버 칩을 개발해 일부 워크로드에 적용했다. Wintel 체제의 균열은 모바일 실패에서 시작됐고, ARM이 전방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6. 마무리
2013~2018년 크르자니크 시기 인텔은 공정 기술 리더십 상실, 모바일 실패, 신사업 투자 실패, 장기 투자 축소, 조직문화 훼손이라는 악재가 겹쳤다. 이 결과 인텔은 2020년대에 명운을 걸고 재건을 시도해야 할 만큼 경쟁력이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30년간 지켜온 인텔의 아성이 불과 10년 만에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결국 인텔 사례는, 장기 안목과 기술 중심 리더십이 무너질 때 첨단 기술기업이 얼마나 빨리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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