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경제와 정치, 기술 환경이 빠르게 요동치는 시대에, 우리는 종종 ‘기존 시스템이 정말 믿을 만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의문이 깊어질수록, 이전과 다른 방식의 대안에 눈길이 간다. 비트코인은 그런 질문과 불신 위에서 탄생한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다.
1. 디지털 화폐와 시스템
비트코인을 단순히 ‘인터넷에서 쓰는 돈’이라고 이해하면, 그 본질을 놓치기 쉽다. 비트코인이 제안된 2008년은 우연한 시점이 아니다. 그해 미국에서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고, 그 여파로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렸다. 정부와 은행이 앞에서는 안정과 신뢰를 말하지만, 실제론 시스템 내부의 불투명성과 탐욕이 그 위기를 만들어낸 것임이 명백해졌다.
바로 그 시점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이 9쪽짜리 논문 하나를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그 논문은 기존 금융 시스템의 ‘중앙 의존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뢰를 중앙이 아닌, 수학과 분산 합의에 맡기는 시스템’, 즉 블록체인을 제안한다. 이 시스템은 매우 근본적인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우리는 왜 중앙기관을 믿어야 하는가? 2) 개인이 서로를 신뢰할 수는 없는가?
2. 금과 종이화폐
우리가 쓰는 돈은 예전엔 금과 연결돼 있었다. 이를 금본위제라 부른다. 돈은 실물 자산인 금에 연동돼 있었고, 정부는 일정량의 금을 보유한 만큼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1년,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 제도를 종료한다. 그 이후로 달러는 금과의 연동이 끊긴 채, 미국 정부의 신용만으로 유통되는 종이가 되어 신뢰도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세계 통화로 작동해 왔다. 어떻게 작동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이라는 묵직한 국제 질서가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전 세계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만들었고, 이는 다시금 달러의 국제적 수요를 만들어냈다. 달러는 금 대신 ‘석유’라는 생존 필수재와 연결되며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 체제도 균열이 가고 있다.
2024년, 미국과 사우디의 암묵적 페트로달러 체제는 종료됐다. 동시에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흔들렸고, 그간 중앙은행들이 무제한적으로 찍어낸 화폐는 ‘물가’라는 현실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묻는다. ‘과연 지금의 종이화폐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가?’ 그리고 그 질문의 또 다른 답으로, 비트코인을 바라본다.
3. 비트코인과 금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 부르는 사람은 많다. 그 말엔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제한된 총발행량: 비트코인은 2,100만 개까지만 발행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종이화폐와는 다르다.
- 부채가 아닌 자산: 화폐는 대개 정부가 발행한 ‘부채의 일종’이다. 반면 금은 부채와 무관한 자산이고,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 탈중앙화 시스템: 금은 국가가 없어도 존재한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만 유지된다면 어떤 국가의 개입 없이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금은 실물 수요가 있다. 산업, 장신구, 중앙은행의 보유고 등 금은 실제로 ‘쓸모’가 있는 자산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철저히 디지털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가치가 오직 사람들의 인식과 합의에 의해 유지된다. 이 점이 비트코인의 ‘가벼움’이자, 동시에 ‘위험’이다. 금은 누가 봐도 가치 있는 자산이지만, 비트코인은 ‘사람들이 믿고 있을 때만’ 가치 있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4. 부채 없는 자산
비트코인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부채와 무관한 자산이라는 점이다. 지금의 금융 시스템은 대부분 신용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은행이 대출을 실행하면, 그 순간 새로운 돈이 생기고, 그 돈이 경제를 순환시킨다. 하지만 이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 매우 취약하다. 금융기관이 흔들리면, 돈의 흐름도 정지된다. 돈이 시스템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돈을 유지하는 셈이다.
비트코인은 이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다. 누군가의 빚으로부터 파생되지 않고, 신용 창출 없이도 유통될 수 있다. 그래서 위기 상황에서는 종종 ‘최후의 도피처’로 거론되곤 한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일부에서는 비트코인을 단순한 대체 자산이 아닌, 기축 통화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자산, 즉 ‘비트코인 본위제(Bitcoin Standard)’로 진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는 과거 금본위제와 유사한 구조다. 정부가 화폐를 발행할 때 무제한으로 찍어내지 않고, 비트코인과 연동된 고정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화폐의 가치를 외부 자산으로부터 방어하려는 시도다.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발행량의 절대 제한이라는 구조적 특징 덕분에, 이론상으로는 국가 간 신뢰 기반의 거래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적합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 비트코인을 연동하자는 제안도 일부 학계에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비트코인은 본질적으로 현재 시스템 밖에 존재하는 자산이며,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를 조율하고자 하는 현대 중앙은행 시스템과는 철학적으로 충돌한다.
물론, 모두가 비트코인을 신뢰하는 시점이 온다면, 중앙은행 체제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룰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이 시스템 내부의 ‘화폐’가 아니라, 시스템 밖에 놓인 하나의 자산, 혹은 이상적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5. 유보적인 입장
필자는 비트코인에 대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긍정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비트코인은 아직 역사적 검증이 부족하다. 역사성을 가진 금, 50년 넘게 기축통화로 자리한 달러와는 다르게, 비트코인은 아직 20년도 되지 않은 신생 자산이다. 또한, 실물 수요가 전무하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개념과 충돌한다. 비트코인은 오직 ‘디지털 저장소’일 뿐이고, 거기에는 물리적 유틸리티가 없다.
그렇다고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금융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 양적완화, 정치화된 통화정책, 그리고 점점 커지는 부채 비율은, 우리 시대의 종이화폐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비트코인은 그 허점들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비트코인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6. 비트코인은 ‘질문’
어쩌면 비트코인은 ‘답’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1) 지금 우리가 쓰는 돈은 정말 안전한가? 2) 정부와 은행은 언제까지 신뢰받을 수 있는가? 3) 중앙 없는 질서, 신뢰 없는 신뢰 시스템은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비트코인은 이 시대에 존재할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 답이 ‘100만 달러’이든, ‘0달러’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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