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신용 사이클 후반부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명확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특정 지표가 급격히 악화된 것도 아닌데 환경이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감각이 먼저 형성된 것 같다. 이러한 감각은 대부분 숫자보다 구조에서 비롯된다. 신용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 신용이 어떤 조건으로 공급되고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는지를 보면 사이클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나타난 변화는 과거 후반부에서 관찰되던 특징들과 일정 부분 겹쳐 보인다. 다만 이번에는 문제가 은행 시스템 내부에 축적된 형태가 아니라 사모 대출 시장을 중심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규제 이후 은행은 자본비율과 유동성 관리 측면에서 과거보다 보수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 체계는 은행이 고위험 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신용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기업은 여전히 자본이 필요했고, 투자자는 여전히 수익률을 원했다. 그 결과 은행이 담당하던 영역의 일부를 사모 대출 펀드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직접 대출, 사모 대출, 구조화 금융과 같은 형태의 자금 공급이 빠르게 성장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신용 공급 구조의 중심축을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는 위험의 위치가 이동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은행의 대차대조표 내부에서 레버리지가 축적되었다면, 최근에는 펀드 구조 내부에서 신용이 확장되었다. 겉으로 보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개선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은행의 자본비율은 높아졌고 스트레스 테스트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된 것에 가깝다. 사모 대출은 가격이 매일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변동성이 늦게 드러난다. 시장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자산은 안정적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변동성이 관측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리스크가 낮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용 사이클의 후반부에서는 자금이 완전히 마르기 직전까지 계속 공급되는 특징이 자주 나타난다. 자금 공급자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요구 조건이 조금씩 변한다. 계약 구조는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EBITDA 조정은 점점 더 공격적으로 이루어지며, 딜 구조는 복잡해진다. 표면적으로는 연체율이 낮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입자의 체력이 점차 약해진다. 특히 금리가 상승한 이후에도 상당수 기업이 만기 연장이나 조건 변경을 통해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신용 환경이 점진적으로 부담을 누적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공개 시장에서는 가격 변동을 통해 리스크가 즉각 반영되지만, 사모 시장에서는 평가가 분기 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기적으로 변동성을 낮추는 효과를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입자의 현금흐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자 부담은 점점 증가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금리 수준 자체보다 현금흐름의 지속 가능성이다. 금리가 높은 상태가 길어질수록 기업 간 체력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번 사이클에서 흥미로운 점은 신용 수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전력 인프라, 에너지 전환, 데이터센터와 같은 영역에서는 대규모 자본이 계속 필요하다. 구조적 투자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용 시장이 갑작스럽게 위축되기는 어렵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급격한 붕괴 가능성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한다. 대신 자금의 가격과 조건이 서서히 변화하는 형태로 사이클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즉 명확한 위기보다는 점진적인 정상화 과정에 가까운 경로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사이클의 위치를 단정하기보다 조건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스프레드의 변화, 리파이낸싱의 난이도, 투자자의 요구 수익률과 같은 요소들이 미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신용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어쩌면 2022년 이후 이미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투자자의 태도가 점점 보수적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이는 사이클 후반부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과 유사하다. 자금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선별성이 높아지고, 동일한 차입자라도 몇 년 전과 같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후반부라는 ‘가설’을 근거로 포지션을 급격히 변경하는 접근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신용 사이클의 후반부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은 종종 예상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 후반부에 진입했다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투자자들의 행동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이러한 보수성 자체가 사이클의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경계심이 커질수록 시스템의 안정성이 일시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용이 공급되는 구조가 변했고, 자금의 가격이 높아졌으며, 투자자의 기대수익률이 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사이클 후반부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과 일정 부분 닮아 있다. 다만 이번 사이클은 은행 시스템이 아니라 사모 대출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과거와 동일한 경로를 그대로 반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이클의 정확한 위치를 단정하는 일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인식하는 일에 가깝다. 신용 환경이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는지, 자금 조달의 조건이 점진적으로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더 유효해 보인다. 시장은 종종 우리가 확신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고, 우리가 확신하는 순간 이미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환경은 명확한 위기 국면이라기보다는 점진적인 압력이 누적되는 구간으로 보인다. 사모 대출 시장은 은행 시스템보다 조정 속도가 느린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변화는 더 천천히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급격한 붕괴보다 조건의 변화가 먼저 나타난다.
PS – 위기는 또 다른 하나의 기회고, 기회는 또 다른 하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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