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단순한 게임일수록 비관이 유리하지만, 장기 게임에서는 낙관이 앞선다. 다만 생존을 위해선 신중함이 필요하다.
1. 낙관주의자가 더 유리한 게임
주식 투자는 본질적으로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개선되고, 기술이 확장되고, 인구가 소비하며, 시장이 확대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미래 개선의 서사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이 전망이 부정된다면 주식 투자는 성립하기 어렵다. 더 나은 미래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채권이나 현금성 자산처럼 보수적인 선택만이 남고, 극단적 비관론으로 가면 실물 저장이나 무력 기반의 생존 전략으로 넘어간다.
장기 시장 데이터를 살펴보면 주식 시장은 언제나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을 반복했지만, 장기 추세는 우상향에 가깝다. 생산성, 인구, 기술, 자본축적 같은 기초 변수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자가 되거나 자산을 증식한 사람들은 대부분 낙관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지속적으로 시장에 참여해야 복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낙관은 무조건적 낙관과 다르다. 무조건적 낙관은 가격과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이클을 무시하며, 위험을 계산하지 못한 채 미래의 개선만을 강조한다. 반대로 신중한 낙관주의자는 장기 방향성은 낙관하면서도 단기 변동성과 사이클의 존재를 인정한다. 결국 시장은 장기적으로 낙관을 보상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신중함을 보상한다. 이 게임의 특성을 이해한 사람들은 낙관을 가져가되, 살아남기 위한 안전장치를 갖추는 쪽으로 진화한다.
2. 시스템의 복원력
사람들은 위기를 이야기할 때 종종 대공황을 소환하며, 이번에도 대공황만큼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극단적 비관론자는 시스템 붕괴나 금융 질서의 종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공황이 재현되기 어려운 이유는 체제 내부의 복원력이 대공황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복원력은 제도, 금융, 정책, 실물, 심리, 인구 구조, 욕망이 결합된 형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단순히 시장 메커니즘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욕망, 미래 기대, 경쟁, 비교심리라는 인간적 동인으로 움직인다. 이 동인들은 위기 상황에서 자산의 대량 청산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격이 충분히 낮아졌을 때 매수세를 유발한다. 남보다 더 잘살고 싶다는 기본적 욕망이 가격 하락을 기회로 보도록 만드는데, 이것이 시스템 복원력의 가장 원초적인 기반이다.
복원력은 제도적 측면에서도 강화됐다. 대공황 당시에는 통화정책, 재정정책, 예금보호, 중앙은행 소통체계, 복지 시스템 등이 부재하거나 미비한 상태였다. 현재는 각종 위기를 통해 시스템이 학습했고 대응 매뉴얼이 발전했다. 위기는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대응 능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2022년 인플레이션 국면은 모두 제도적 복원력의 진화를 이끌었다.
또한 붕괴 시나리오를 가정할 때 자산의 역할이 달라진다. 레벨 1은 금융 중심 붕괴, 레벨 2는 통화 붕괴, 레벨 3은 법·치안 붕괴, 레벨 4는 국가 기능 붕괴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위기는 레벨 1~2에서 멈추며, 레벨 3~4는 실질적인 붕괴라기보다는 전쟁이나 무력 충돌에 가까운 영역이다. 레벨 1~2 위기에서는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더라도 재편, 회복, 재확장으로 이어진다. 이 지점이 대공황 재현이 쉽지 않은 이유다.
3. 금융 공학의 발전
위기 발생 시 과거보다 시스템 붕괴 확률이 낮아진 또 하나의 이유는 금융 공학의 발전이다. 금융이 발전했다는 말은 위험을 이전하고, 분산하고, 가격화하고, 헤지할 수 있는 메뉴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대공황 시절에는 위험을 분산할 수단이 제한적이었다. 위험이 발생하면 은행이 파산하고, 기업이 청산되며, 가계는 실업을 겪었고, 이 손실이 거대한 연쇄 부도로 이어졌다. 지금은 다양한 헤지 수단이 존재한다. 파생상품, 통화스왑, 금리 파생, CDS, 옵션, ETF, ETN, 인덱스 헷지, 신용시장, 사모신용, 사모대출 등 선택지가 증가했다. 위험은 금융시장 내부에서 흡수되거나 이전될 수 있으며, 금융권의 스트레스는 보다 정교하게 측정된다.
정책 측면에서도 발전했다. QE, QT, ZIRP, NIRP, 스왑라인, 무제한 유동성 공급, 국채 유동성 지원, 예금보험, 자본규제 같은 제도는 위기 발생 시 시스템 붕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도구들은 단기적으로 시장 왜곡을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헤지 수단이 많아질수록 위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재편된다. 시장은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가격화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와 정책 결정자는 과거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고, 선택지는 복원력을 강화한다.
4. 실물 자산의 대중화
과거 위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실물 자산 보유가 소수의 영역이었다는 점이다. 토지, 주택, 금, 에너지와 같은 실물 기반 자산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금융자산과 분리되어 있었다. 지금은 주택 보유율이 높아지고, 리츠나 ETF를 통한 실물 자산 접근성이 높아졌다. 실물 자산 대중화는 위기 시 시스템 붕괴 가능성을 낮춘다.
자가 주택 보유는 금융시장과 실물 시장을 연결하는 핵심 연결고리다. 집을 가진 사람은 금리, 통화, 세금, 부동산 정책, 노동시장, 인구 구조 모든 요소를 체제의 작동과 함께 이해관계로 연결시킨다. 이해관계자가 증가할수록 시스템 붕괴보다는 시스템 안정 또는 재편이 선호된다.
또한 실물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위기는 기회로 작동한다. 가격 하락 시 매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계층이 존재하면 폭락 이후의 회복 속도는 빨라진다. 욕망 기반 시장에서 가격 하락은 비교심리와 경쟁심리를 자극하며, 이 과정이 복원력의 심리적 토대를 형성한다.
실물 대중화는 위기를 금융 붕괴가 아니라 자산 재편 과정으로 만든다. 이 재편 과정에서 자산은 새로운 손에 넘어가고, 새로운 가격 기반이 형성되며, 확장 국면이 재개된다.
5. 신중함 한 스푼
복원력과 낙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주식 시장은 폭락과 폭등이 상시 존재하는 게임이다. 사이클은 반복되고 가격은 과도하게 올라가거나 과하게 내려간다. 이 변동성이 신중함을 요구한다.
신중함은 비관이 아니다. 시스템 붕괴를 가정하는 비관론은 투자와 별개 영역이다. 신중함은 사이즈 조절, 레버리지 사용 관리, 분산, 현금 비중 조절, 업종 순환 관찰, 국면 파악, 리스크 한도 설정 같은 실무적 개념들과 연결된다. 낙관주의자는 시장에 참여하지만, 신중한 낙관주의자는 시장에 계속 남는다.
변동성이 중요한 이유는 생존 때문이다. 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복리를 확보해야 하고, 복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청산되지 않아야 한다. 복리는 확률 게임이 아니라 생존 게임이다. 청산되거나 시장에서 탈락하면 장기 복리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함은 복리를 향한 보험과도 같다.
폭락 국면에서는 실물 자산 보유자나 현금 비중 보유자가 시장을 재편하며, 폭등 국면에서는 과도한 기대가 형성되지만 결국 균형으로 회귀한다. 이 균형 회귀 속에서 체제는 무너지지 않고 이기는 자와 지는 자만 교체된다.
6. 마무리
주식 투자는 문명의 지속에 대한 베팅이다. 문명이 지속된다면 기업 이익은 유지되고, 생산성은 상승하며, 자본축적이 이루어지고, 주식은 복리를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문명이 붕괴된다면 금융은 무력화되고, 그때는 실물과 생존의 영역이 된다. 이 두 시나리오 사이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신중한 낙관주의다.
낙관은 방향성이고, 신중함은 생존이다. 방향성만 있는 경우 복리를 향한 길은 보이지만 살아남지 못할 수 있고, 생존만 있는 경우 시장에 참여하지 못해 복리를 놓친다. 신중한 낙관주의자는 방향성과 생존을 모두 확보하려는 태도다.
결국 세계는 완만하게 나아지며, 때때로 크게 흔들리고, 때로는 극단적으로 요동치지만, 시스템은 붕괴 대신 재편과 회복을 선택한다. 붕괴하지 않는 체제에서 주식 투자는 최적의 자본 증식 수단이 된다.
돈을 벌기 위해선 낙관주의자가 필요하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신중함이 필요하다. 신중한 낙관주의자가 유리한 이유는 이 게임이 장기 게임이며, 장기 게임의 승자는 참여와 생존을 동시에 충족하는 사람이라는 점에 있다.
PS – 인간에게 감정과 심리가 존재하는 이상 폭등과 폭락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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