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를 단순한 패션 기업이나 명품 브랜드로 규정하는 방식은 이 기업이 지닌 본질적인 가치를 조명하기에 부족함이 많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 내에서 에르메스는 독자적인 생태계와 논리를 구축한 하나의 정교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생산 비용을 낮추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분투할 때, 에르메스는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가장 강력한 경제적 해자를 구축해냈다. 이러한 역설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단기적인 이익을 쫓는 시장의 압박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오직 브랜드의 영속성과 희소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지배구조에서 기인한다.
에르메스의 생산 방식은 현대 산업의 표준에서 보면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분업화된 공장 시스템 대신 한 명의 장인이 가방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은 생산 속도를 현저히 늦춘다. 하지만 이 비효율은 에르메스가 지닌 압도적인 영업이익률의 근간이 된다. 장인의 손길이 닿은 제품은 대량 생산된 재화가 가질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을 획득하며, 이는 소비자에게 강력한 프라이싱 파워를 행사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공급이 수요를 결코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에르메스는 매년 가격을 인상하면서도 수요의 위축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위치를 점유한다. 이는 매출원가의 상승을 브랜드 프리미엄으로 가볍게 상쇄하는 결과를 낳으며, 결과적으로 산업 내 최고 수준의 이익률을 보장한다.
협업과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태도 역시 에르메스만의 철저한 자기 절제를 보여준다. 타 명품 브랜드들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단기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화려한 협업을 남발하는 것과 달리 에르메스는 이미지 소비를 극도로 경계한다. 럭셔리의 핵심은 대중과의 거리감에 있으며, 브랜드가 너무 자주 노출되거나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간 그 가치는 감가상각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무조건적인 폐쇄성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애플과 같은 기술 분야의 정점에 있는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아날로그적 유산에 현대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감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디지털 기기조차 대물림할 수 있는 가치로 승화시키려는 시도이며, 미래의 잠재 고객인 젊은 세대에게 에르메스의 가죽 질감을 일상적으로 각인시키는 영리한 전략이다.
에르메스의 판매 방식 중 가장 논란이 되면서도 독보적인 체계는 이른바 실적제 혹은 쿼터제라고 불리는 구매 시스템이다. 버킨이나 켈리와 같은 핵심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을 먼저 구매하며 실적을 쌓아야 하는 방식은 소비자 권익의 관점에서는 불합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에르메스 시스템 내에서 이는 단순한 상술이 아니라 리셀러를 걸러내고 브랜드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파트너를 선별하는 필터 역할을 수행한다(리셀러를 완벽히 걸러낼 순 없음). 고객이 가방 외에 접시, 신발, 가구 등을 구매하게 함으로써 에르메스는 특정 카테고리에 편중되지 않은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또한 높은 진입장벽을 뚫고 제품을 손에 넣은 고객은 강한 소속감과 보상 심리를 얻게 되며, 이는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로열티로 이어진다.
이러한 독특한 비즈니스 로직이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에르메스의 지배구조에 있다. 상장된 많은 기업이 주주의 단기 실적 압박에 밀려 브랜드의 본질을 훼손하는 길을 걷지만, 에르메스는 합자 주식회사(SCA) 구조를 통해 경영권과 소유권을 완벽하게 분리했다. 무한책임사원인 가족 법인이 절대적인 경영 의사결정권을 독점하며, 일반 주주들은 경영 간섭권 없이 배당의 권리만을 가진다. 이는 기업이 분기별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50년, 100년 뒤를 내다보는 초장기적 관점의 경영을 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지난 2010년 외부의 적대적 M&A 시도에 맞서 가족 주주들이 지분을 동결하고 지주회사를 설립한 사례는 에르메스가 자본의 논리보다 가문의 유산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상위 가치로 두는지 잘 보여준다.
재무적인 측면에서도 에르메스는 패밀리 기업 특유의 보수성을 견지한다. 외부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 유보금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무부채 경영은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안전판이다. 경제 위기가 닥쳐올 때 다른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가격을 낮추거나 마케팅을 강화할 때, 에르메스는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핵심 원재료 공급망을 강화하거나 장인 양성에 더 투자하며 해자를 깊게 판다. 이러한 보수적인 자본 배치는 단기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는 투자자에게는 답답해 보일 수 있으나, 영속적인 수익을 원하는 장기 투자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신뢰의 지표가 된다.
에르메스를 린디 효과에 대입해보면, 앞으로도 1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존하며 더 존속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러한 2차 모형은 불안정하므로 보수적으로 해석하여 그 기대 수명의 절반만을 안전마진으로 적용해본다면, 현재 시장에서 일어나는 주가 조정으로 인해 형성된 가격(약 2,000억 불)은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다고 보인다. 다만 현재의 주가가 합리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자산군이나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왜곡된 가격대에 진입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필자 기준에선 매력적인 가격대라고 보이진 않는다(매력적인 가격까지 떨어질진 모르겠지만).
PS – 멍거는 명품을 싫어했지만, 에르메스라는 기업은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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