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엔 은행은 매우 안정적인 산업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달 꾸준히 예금이 들어오고, 대출 이자로 수익을 내고, 국가가 직접 규제하는 만큼 쉽게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까지 준다. 그래서 초보 투자자나 안정적인 배당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은행주를 ‘안전한 투자처’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은행 산업은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작은 충격이 연쇄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분야다. 투자 전 이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1. 복잡한 재무 구조
은행의 재무제표는 일반 제조업이나 IT 기업의 재무제표와 완전히 다르다. 자산의 대부분은 ‘대출채권’과 ‘유가증권’ 같은 금융상품이고, 부채의 대부분은 ‘예금’이다. 제조업의 경우, 공장을 몇 개 가지고 있는지, 원재료를 얼마에 사오는지, 매출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만 봐도 대략적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은 자산과 부채가 모두 ‘금융상품’이라는 점에서, 장부에 기재된 숫자만 보고는 리스크를 직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대출채권이 100조 원 있다고 해도, 그 안에는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대출도 있고, 변동금리로 빌려준 주택담보대출도 있고, 고위험의 중소기업 대출도 섞여 있다. 심지어 대출뿐 아니라 파생상품, 장외거래, 해외 지점 자산까지 포함되면, 투자자가 직접 이 포트폴리오를 분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리먼 브라더스나 AIG도 위기 직전까지 표면상 건전성 지표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장부에 나타나지 않는 파생상품 부실과 비유동성 자산이 한 번에 터지면서 순식간에 붕괴했다. 이처럼 은행 산업의 복잡한 재무 구조는 투자자가 ‘진짜 리스크’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2. 과도한 레버리지(feat. 신용창조)
은행은 기본적으로 레버리지를 극단적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예금자에게서 100을 예치받으면,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90을 대출해준다. 그리고 그 대출금이 또 다른 은행에 예금으로 들어가면, 다시 대출로 나간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실제 예금보다 훨씬 많은 대출이 시장에 풀리게 된다. 이걸 ‘신용창조’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구조가 경제 성장기에는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지만, 불황기에는 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운다는 데 있다. 대출 부실이 생기면 그 손실은 단순히 한 건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차례 파생된 대출과 채권, 파생상품에 영향을 준다. 특히 은행은 자기자본 대비 10배 이상, 경우에 따라 20배 이상 레버리지를 쓰기도 한다. 제조업에서 부채비율 200%만 돼도 위험 신호로 보는데, 은행은 구조적으로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레버리지가 과도한 산업에서는 작은 손실이 자기자본을 순식간에 깎아먹는다. 그리고 시장은 이를 ‘신뢰 붕괴’로 받아들이고, 예금 인출, 주가 폭락, 신용등급 하락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3. 도미노 연쇄 부도
은행 산업의 가장 무서운 점 중 하나는, 내가 투자한 은행이 아무리 건전하게 운영돼도, 다른 은행이 위기에 빠지면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다양한 채권, 대출, 파생상품을 서로 얽히고설키게 거래한다. A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B은행이 보유하고, B은행이 대출해준 기업이 C은행에 예금을 갖고 있는 식이다.
그래서 한 은행이 부실화되면, 거래 관계에 있는 다른 은행들도 ‘연쇄 부도 위험’에 노출된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을 때, 리먼과 직접 거래가 없던 유럽 은행들까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이유가 이 상호연결성 때문이다. 금융시장은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데, 어느 한 곳의 신뢰가 붕괴되면, ‘혹시 다른 은행도?’라는 공포가 순식간에 퍼진다.
4. 거시경제의 영향
은행은 경제 전체의 ‘혈액순환’을 담당하는 산업이라, 거시경제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금리가 오르면 예대마진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대출 상환 부담이 커져 부실이 증가할 수 있다. 반대로 금리가 낮아지면 대출 수요는 늘지만, 예대마진이 줄어 수익성이 악화된다.
또한 경기 침체기에는 기업 파산과 실업 증가로 대출 부실이 급증한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 관련 산업 대출 부실이 늘어난다. 은행은 산업 구조상 경기 방어력이 거의 없다.
결국 거시경제의 방향을 예측해야만 은행주의 미래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데, 거시경제 예측은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도 자주 틀린다. 이건 투자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5. 기술 발전
과거 뱅크런은 은행 지점 앞에 예금자들이 줄을 서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앱 몇 번만 누르면 수억 원을 순식간에 다른 은행으로 옮길 수 있다.
이 변화는 은행 위기 상황에서 유동성 고갈 속도를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만든다. 예전에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움직여 은행에 도착하는 데 하루 이상이 걸렸지만, 이제는 SNS로 루머가 퍼진 지 몇 분 만에 수천억 원이 빠져나갈 수 있다.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대표적이다. 불과 하루 만에 예금 인출 요청이 420억 달러에 달했고, 은행은 버티지 못했다.
이건 기술 발전이 은행 리스크를 ‘속도’라는 차원에서 완전히 바꿔버린 사례다. 투자자가 아무리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보고 투자한다고 해도, 이런 단기 유동성 위기는 예측하거나 방어하기 어렵다.
6. 마무리
은행주는 배당도 주고, 정부 규제 하에 있어서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재무 구조, 과도한 레버리지, 도미노식 연쇄 부도 위험, 거시경제 의존성,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리스크 등 다층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산업은 잘 나갈 때는 모든 지표가 좋아 보이지만, 위기가 닥치면 하락 속도와 피해 범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투자자는 단순히 ‘은행=안전’이라는 등식을 버리고, 은행주가 가진 구조적 리스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안정성은 착시일 수 있고, 그 착시가 깨질 때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같이 보면 좋은 글
–신용창조란?, 은행의 본질
–예금자보호 1억, 이젠 안심해도 될까?
–카카오와 토스, 그 안에 숨은 중국 자본의 그림자
–스테이블코인이란?, 안정된 디지털 화폐를 향한 시도
–카오스 이론,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
–폰지 사기란?, 약속된 수익 뒤에 숨겨진 거짓의 구조
–바젤 합의(Ⅰ, Ⅱ, Ⅲ), 위기를 거울삼아 진화한 국제 은행 규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