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중반 심리학의 중심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분석하던 학파에서 객관적인 관찰과 측정을 강조하는 행동주의로 급격하게 이동했다. 이 사상의 출발점은 인간의 마음이나 생각, 혹은 무의식처럼 외부에서 검증할 수 없는 대상을 과학의 영역에서 철저히 제외해야 한다는 완강한 전제였다. 행동주의 학자들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일종의 검은 상자로 규정하고, 오직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환경적 자극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관찰 가능한 행동의 관계만을 분석하고자 했다. 이러한 관점을 자극과 반응의 패러다임이라고 일컬으며, 이는 주관적 해석에 머물던 심리학을 통제와 예측이 가능한 자연과학의 반열로 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극단적인 패러다임의 문을 열어젖힌 인물은 미국의 존 왓슨이다. 왓슨은 이반 파블로프의 동물 실험 결과에 깊은 영감을 받아 인간의 감정이나 성격마저도 외부 자극의 설계를 통해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생후 9개월 된 영아를 대상으로 알버트 아기 실험을 진행했다. 본래 흰 쥐를 두려워하지 않던 아기에게 쥐를 만질 때마다 뒤에서 쇠파이프를 내리치는 날카로운 고통의 소리를 함께 들려주자, 아기는 나중에 소리가 나지 않아도 흰 쥐만 보면 극심한 공포 반응을 보였다. 더 나아가 털코트나 토끼처럼 쥐와 유사한 질감을 가진 사물에까지 공포를 느끼는 자극 일반화 현상이 나타났다. 왓슨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건강한 아기들과 특정한 환경을 제공한다면 개인의 자질이나 인종과 무관하게 의사나 법률가, 심지어 부랑자나 범죄자까지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강한 환경 결정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왓슨의 이러한 학문적 여정은 도덕성과 윤리적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비판을 마주했다. 실험의 대상이었던 아기에게 인위적으로 공포증을 심어준 뒤 이를 치료하는 탈조건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실험을 무책임하게 종료했기 때문이다. 아기의 신원과 이후 삶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다른 인물을 지목하며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나, 탈조건화 없이 실험을 종료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학적 증명을 위해 인간을 철저히 수단으로 삼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또한 왓슨은 감정을 행동을 왜곡하는 불순물로 취급하는 자신의 행동주의적 육아법을 친자녀들에게 강제로 적용했다. 자녀들을 안아주거나 친밀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기계적인 규칙 아래 차갑게 양육한 결과, 그의 자녀들은 성인이 된 후 심각한 정서적 결핍과 우울증을 겪었으며 자살과 알코올 중독으로 삶이 파멸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는 인간의 애착 본능을 거세한 기계적 통제가 유기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 되는지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학문적으로도 고차원적인 사유 과정을 단순히 성대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는 등 정신 현상을 물리적 반응으로 무리하게 환원하려다 학문의 시야를 스스로 좁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왓슨이 자극과 반응을 단순히 연결하는 수동적인 학습 메커니즘을 제시했다면, B.F. 스키너는 이를 한 단계 발전시켜 조작적 조건형성 이론을 확립하며 행동주의의 정점을 찍었다. 스키너는 인간을 포함한 유기체가 스스로 행한 행동의 결과에 따라 향후의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특정한 행동의 뒤를 이어 보상이 주어지는 정적 강화가 일어나면 그 행동의 빈도가 늘어나고, 반대로 처벌이나 고통이 수반되면 행동을 중단한다는 원리다. 이 인과적 법칙은 대단히 직관적이고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강력하게 작용하여, 현대의 교육 체계나 마케팅, 모바일 게임의 보상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핵심 뼈대가 되었다. 특히 행동이 일어날 때마다 일정하게 보상을 주는 방식보다 언제 보상이 제공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를 유지할 때 유기체가 가장 강하게 중독된다는 간헐적 보상의 발견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와 투자 행태를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로 쓰인다. 슬롯머신의 메커니즘이나 주식 시장의 불규칙한 등락 속에서 투자자들이 잦은 매매를 반복하며 도파민 체계의 노예가 되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시다.
하지만 스키너 역시 자신이 정립한 조작적 조건형성의 틀에 인간 사회 전체를 무리하게 대입하려다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저서 등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내린다고 믿는 주체적인 선택이나 도덕적 결단, 나아가 자유의지와 존엄성이라는 가치 자체가 환경의 자극에 의해 조작된 착각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스키너의 시각에서 범죄와 영웅적 행위는 개인의 선악이나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단지 그가 처한 주변 환경과 보상 체계가 어떻게 조건화되었느냐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었다. 그는 더 나아가 통제 기술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사회의 보상과 처벌 시스템을 정교하게 엔지니어링하여 범죄와 빈곤을 통제하는 기술 관료주의적 유토피아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상은 전체주의적 독재나 국가의 과도한 통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악용될 위험성이 컸기에 학계와 사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스키너는 자신이 가진 도구의 효용성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신념을 위해 눈앞의 보상을 거부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 연산 과정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행동주의의 지평은 이 두 인물의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사회적 속성과 생물학적 생존 원리를 결합한 후기 이론들로 확장되며 더욱 정교해졌다. 알버트 반두라는 인간이 직접적인 보상이나 처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행동과 그 결과를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행동을 학습할 수 있다는 사회학습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인간의 학습이 단순히 기계적인 자극-반응의 반복이 아니라, 타인의 경험을 복제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전염성과 인지적 매개 과정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동시에 클라크 헐은 유기체가 내재적인 생물학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는 추동 감소 이론을 통해 행동주의에 생리적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배고픔이나 갈증 같은 결핍 상태가 발생하면 유기체는 이를 해소하려는 강력한 추동을 느끼게 되며, 이 추동을 감소시키는 행위 자체가 강력한 보상으로 기능하여 행동을 고착시킨다는 원리다. 이러한 후기 이론들은 행동주의가 단순히 외부 환경의 노예로 인간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유기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생존과 적응을 도모하는 치밀한 인과관계의 총체임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다채로운 학자들이 이끈 행동주의가 20세기 서구 사회에서 강력한 주류 사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대의 격변하던 세계사적 시대상이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는 미국을 중심으로 거대한 산업화와 대량 생산 방식인 포디즘이 산업 전반을 지배하던 기계화의 정점이었다. 당시의 자본주의 경제 구조와 공장 경영자들에게 필요한 인간상은 무의식의 고뇌를 안고 사는 복잡한 인격체가 아니라, 정해진 자극에 기계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응하여 규격화된 노동을 수행하는 효율적인 인적 자원이었다. 인간 행동의 예측과 통제를 실용적으로 달성하고자 했던 행동주의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요구와 정확하게 부합했다.
동시에 발생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은 기존의 추상적인 가치관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과거 유럽의 풍요 속에서 유행하던 프로이트식 정신분석학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대중과 강력한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국가 정부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해답을 주지 못했다. 전시의 국가 권력에게 시급했던 과제는 군인들을 최단 시간에 훈련시키고 전단지를 활용해 대중의 심리를 선전 선동하며 전후 부적응자들의 파괴적인 행동을 신속하게 교정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실용적인 기술이었다. 파블로프와 왓슨, 스키너가 통찰해낸 조건형성과 보상 구조는 군대 조직의 관리와 대중 통제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군더더기 없는 실전 매뉴얼로 기능했다. 학계 전반을 강타한 논리 실증주의 사조 역시 검증할 수 없는 명제를 거부하고 오직 실험실에서 계량화할 수 있는 데이터만을 과학으로 인정함으로써 행동주의의 독주 체제를 단단하게 뒷받침했다.
국가 생존과 통제라는 극단적 목적이 지배하던 이 시기에는 심리학과 전반적인 과학 기술 역량이 급격하게 수직 상승하는 동시에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실험들이 조직적으로 횡행하는 어두운 역설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인 미국의 MK울트라 프로젝트는 냉전 정국에서 상대 진영의 세뇌 기술에 대응하고 인간의 정신을 완벽하게 재프로그래밍하려는 목적으로 민간인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행되었다. 피실험자들에게 강력한 환각제를 강제 투약하고 감각 박탈 장치에 가두어 외부 자극을 완전히 차단한 뒤 특정 메시지를 무한히 반복해 들려주는 등의 실험은 인간의 마음을 자극의 조작으로 지우고 새로 깔 수 있는 하드디스크처럼 취급한 극단적 행동주의 통제의 비극이었다. 또한 평범한 인간이 권위의 명령에 따라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증명한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나, 특정한 환경과 역할의 자극이 주어졌을 때 도덕성이 마비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이후 실험자 짐바르도가 직접 교도관 역할에 개입하는 등 설계 자체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당대의 차가운 인간관이 투영된 사례로 여전히 언급된다.
행동주의는 유기체가 환경적 인센티브와 처벌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증명해내며 인간 행동의 상당 부분을 명쾌하게 설명해냈다. 인간이 스스로 이성적이라 자부할 때조차 실제로는 인센티브 편향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인지 구조를 왜곡한다는 통찰은 훗날 주류 경제학의 맹점을 깨부순 행동경제학의 중요한 사상적 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똑같은 자극과 손실 앞에서도 인간이 저마다의 인지적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선택을 내리는 고차원적인 내부 연산 과정을 철저히 무시한 점은 이 학파가 가진 치명적인 한계였다. 인간을 주체적인 사유의 주체에서 환경 보상에 춤추는 정교한 비둘기 수준으로 격하시킨 오만함과 실험실 속에서 자행된 도덕적 결핍은 심각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을 수단화해서는 안 된다는 연구 윤리 기준이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고, 자극과 반응 사이에 인간의 독자적인 생각과 해석을 담당하는 내부 컴퓨터가 존재한다는 인지주의와 인간의 잠재력을 믿는 인본주의가 대두하며 행동주의는 주류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주의가 구축한 정교한 보상 설계도와 조건형성의 법칙들은 현대의 수많은 디지털 플랫폼과 사회적 통제 시스템의 뼈대로 남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PS – 윤리가 무시될 때 발전이 가장 빠르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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