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이나 개별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서울 용산에서의 부지 매입, 서해상 항행 금지 구역 설정 등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구조적으로 연결해서 보면 한국의 실질적인 주권 통제력을 시험하는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고강도 충돌 없이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한국의 체계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1. 용산 부지 매입
2024년, 중국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 기존 대사관 부지와 합산하면 총 1,256평 규모의 외교 공간을 확보하게 됐다. 해당 부지는 대통령실, 국방부, 미국 대사관, 전직 미군기지 등 대한민국 외교·안보의 핵심 거점들과 인접한 지역이다. 외교부는 이를 외국공관의 정상적인 확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상징성과 전략적 민감성을 고려할 때, 단순한 외교 행위로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2. 서해 항행 금지
해양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2025년 5월, 중국은 자국 해상안전국 공고를 통해 서해상의 세 구역을 군사훈련 목적의 항행 금지 구역으로 일방적으로 설정했다. 문제는 이 중 일부가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쪽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군사 훈련을 위한 임시 조치라고 밝혔지만, 해당 지역은 한중 어업협정에 따라 잠정조치수역(PMZ)으로 지정된 구역이다. 이 지역은 양국 간 해양 경계 획정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으로 관리되고 있는데, 중국이 일방적으로 제한구역을 설정하고 군사 활동을 예고한 것은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이 지역에 해양 구조물을 설치한 전력이 있다. 2018년에는 ‘선란 1호’라는 해상 플랫폼을, 2024년에는 ‘선란 2호’를 세웠다. 중국은 이를 양식장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위치와 규모, 사용 목적 등을 감안하면 단순한 민간 어업 시설이 아니라 자국의 존재감을 심고 해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시설로 해석할 수 있다. 구조물을 먼저 설치하고, 이후 실질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은 중국이 과거에도 활용했던 전형적인 전략이다.
3. 남중국해 사례
이와 같은 방식은 남중국해에서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2010년대 중반,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난사군도) 인근의 암초와 환초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이를 군사 기지화했다. 대표적인 예로 파이어리 크로스 암초, 수비 암초, 미스치프 암초 등이 있으며, 이곳에는 활주로, 미사일 기지, 군용기 격납고 등이 들어섰다. 중국은 이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이에 반발하고 있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필리핀이 제기한 남중국해 분쟁 중재 절차에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기각하고, 인공섬 건설과 군사화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중국은 해당 판결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후에도 물리적 통제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국제법적 정당성보다 실질적 지배력이 국제 관계에서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서해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구조물 설치, 해역 통제 조치, 군사 활동 확대라는 단계적 접근을 통해, 한중 간 경계가 불분명한 해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단지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어업, 자원, 해상 교통로, 국가안보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한국이 현재와 같은 속도로 대응한다면, 점차 이 해역에서의 실질적 권한과 활동 범위가 축소될 우려가 있다.
4. 중국의 전략
중국의 이런 해양 전략은 2010년대부터 본격화된 이른바 ‘해양 굴기’ 정책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은 주변 해역에서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국제 해양법의 해석을 자국 중심으로 유도하는 데 지속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주변국과의 분쟁에도 불구하고 군사화가 완료된 인공섬을 통해 강력한 해양 거점을 확보했으며, 동중국해에서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분쟁을 통해 일본과의 해양 경계 문제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황해와 서해 역시 이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외교 분야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전개되고 있다. 서울 용산의 중국 대사관 부지 확장은 단순한 외교 공간의 확대가 아니다. 국가의 핵심 정치·외교·군사 인프라가 밀집한 지역에서 중국 외교시설이 대규모로 확장된다는 것은, 전략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정치적 영향력 확보와 정보 접근성 강화라는 목적을 함께 갖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상 외국 정부의 부동산 취득을 원천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방식은 제도적 허점을 이용한 간접적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5. 한국 정부의 대응과 중국의 점진적 침투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이러한 사안에 대해 비교적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해양 활동에 대해서는 국제법상 절차를 따랐다는 중국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태이고, 용산 부지 매입 건에 대해서도 관련 법령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에 문제 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단기적으로 갈등을 회피할 수는 있어도,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공간적 주권과 전략적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지금 한국을 상대로 고강도 충돌 없이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해양, 외교, 부동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법적 허용 범위 안에서의 행동을 축적하며, 시간이 지나면 돌이키기 어려운, 사실상 통제권을 기초로 한 사후 정당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이라도 단편적 대응이 아닌 구조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법적 대응, 외교 공조, 법제 정비, 국민 인식 강화 등을 통해 점진적 잠식에 대한 실질적 저지선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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