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산업 분석, 보호무역과 전기로

금리 상승기 억눌린 투자와 인프라 프로젝트가 다시 움직이고, 전기로 증설과 보호무역이 맞물리며 철강 산업은 새로운 사이클의 초입에 서 있다.

1. 구조적 사이클

철강 산업은 전형적인 경기순환 업종으로 분류되지만, 단순한 경기 민감도를 넘어선 고유의 변동성을 가진다. 철강은 건설, 자동차, 조선, 기계, 에너지 설비 등 여러 산업의 필수 기초재로 투입되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 흐름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하지만 수요 변동 폭과 비교해 가격·스프레드·가동률 변동 폭은 훨씬 크며, 이는 철강 공급 구조가 본질적으로 불연속적이기 때문이다.

고로 중심의 통합 제철소는 휴풍이나 중단을 결정하면 막대한 재가동 비용과 수개월 이상의 시간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설비를 껐다 켜는 결정을 매우 신중히 내린다. 이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시그널이 나타나면 부분적 증산보다 과감한 풀가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공급이 한순간에 점프하는 계단식 패턴이 나타난다. 전기로(EAF)는 상대적으로 가동·정지가 유연하고 건설 리드타임도 짧지만, 신규 설비가 완공되면 수백만 톤 단위의 공급능력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공급 변동은 여전히 불연속적이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가동률 지표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수요가 회복되면 가동률은 수개월 내 70%대에서 80~85%까지 단숨에 뛰어오르고, 가격과 스프레드가 동반 상승한다. 2017~2018년 사이클은 중국의 공급측 개혁으로 과잉 설비가 줄어든 상황에서 글로벌 수요가 회복되며 가동률이 85%대에 도달했고, 기업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개선됐다. 2019~2020년에는 미·중 무역분쟁과 팬데믹 충격으로 가동률이 60%대까지 급락했으나, 2021년 들어 보복 수요와 공급망 병목으로 인해 다시 80%대 후반까지 급등했다. 이처럼 철강 사이클은 완만하게 오르내리기보다 단기간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톱니형(saw-tooth) 패턴을 보인다.

2. 보호무역

철강 산업은 세계무역에서 가장 보호주의적 색채가 강한 산업 중 하나다. 철강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고, 자국 내 고용·안보·전략산업 유지 차원에서 보호정책이 반복된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과잉 생산과 저가 덤핑이 글로벌 시장을 압박하면서, 각국은 전방위적으로 무역 장벽을 높였다. 미국은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대부분의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유럽연합은 세이프가드(수입할당제)를 시행하여 일정 물량 이상은 추가 관세가 붙도록 했다. 인도는 10~15% 수준의 기본 관세 외에도 특정 품목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국내 기업을 보호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도 전략 물자와 국방 수요를 고려한 수입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보호무역 정책은 단순히 외국산 제품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입 경쟁이 줄어들면 국내 기업은 가격 방어 여력이 생기고, 설비 가동률을 높여도 마진이 유지된다. 이는 국내 설비의 조기 재가동과 증설을 촉진하고, 자국 내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이 인프라법IRA 보조금에 Buy America 조항을 포함해 미국산 강재 사용을 사실상 의무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은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해 역내 생산이 아닌 수입 철강에는 탄소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역내 저탄소 철강에 경쟁우위를 부여한다.

이런 흐름은 글로벌 공급망을 지역화 방향으로 재편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이 저가 제품을 대규모로 수출하며 세계 철강 가격을 사실상 결정했지만, 이제는 각국이 자국 생산을 우선하고 수입을 제한하기 때문에 지역별 가격 차이가 확대되고, 현지 설비 가동률이 세계 평균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전기로(EAF) 중심으로 신규 설비 투자를 늘리며 80% 이상 가동률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고, 유럽은 그린 딜 정책과 연계해 저탄소 전환과 공급망 자급률을 동시에 달성하려 하고 있다. 보호무역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자국 산업을 재편하고 차세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3. 긴축에서 완화로

2022~2024년은 전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과 통화 긴축이 이어지며 자산시장뿐 아니라 실물투자에도 부담이 커진 시기였다. 미국 연준은 2022년부터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려 5%대까지 끌어올렸고, 유럽중앙은행·한국은행도 연이어 금리를 인상했다. 이로 인해 주택 모기지 금리, 기업 차입금리가 동시에 상승했고, 건설·설비 프로젝트의 금융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주택 착공은 팬데믹 직후의 최고 수준에서 20~30% 이상 감소했고, 민간 설비 투자 역시 연기되거나 규모가 축소됐다. 한국, 유럽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건설경기가 위축되며 철근·후판 등 주요 제품 소비가 감소했고, 글로벌 조선 발주와 자동차 판매도 둔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지연은 영구적인 수요 소멸이 아니라 시간을 미룬 형태에 가깝다. 수요를 억눌렀던 핵심 요인은 높은 금리와 불확실성이었고, 이 요인들이 완화되면 대기 중이던 프로젝트가 착공 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흔히 ‘pent-up demand’라 불리는 억눌린 수요로, 경기 사이클의 반등 국면에서 한꺼번에 분출되며 생산·가격·가동률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특히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IIJA(인프라 투자법)를 통해 수년치 인프라 지출 예산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도로·교량·항만 현대화, 반도체 공장, 전기차 배터리·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차례로 착공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럽도 REPowerEU, Green Deal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전력망 현대화와 수소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예산을 배정하고 있고, 일본·한국도 전력망 강화, 데이터센터, 원전·재생에너지 확충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데이터센터·AI 인프라 투자 역시 새로운 수요 축으로 등장해 철강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긴축이 완화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 이런 응축 수요는 순차적이기보다 계단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2021년 보복소비 시기에도 가동률이 단기간에 80%대 후반까지 치솟으며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번 사이클 역시 금리가 안정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재개되면 비슷한 가동률 급등이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번에는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보조금이 동반된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민간 수요 반등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보장된 수요가 추가되므로, 사이클이 더 길고 안정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4. 중국의 경기부양

세계 조강 생산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중국의 정책 방향은 글로벌 철강 사이클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중국은 부동산 부문 부실과 인구 감소로 건설 수요가 둔화되자,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인프라·신에너지·첨단 제조업 중심의 대규모 부양책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대규모 특별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철도·도로·항만·전력망 등 전통 인프라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풍력·태양광·수소·배터리 등 신에너지 산업 지원을 강화해 제조업 고도화와 산업 전환을 꾀하고 있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인민은행은 지급준비율 인하와 대출 우대금리(LPR) 인하 등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기업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고, 지방정부 인프라 투자 여력도 확대된다. 최근 몇 분기 동안 철강 수요 감소폭이 완화되고, 고로 가동률이 바닥에서 반등하는 조짐이 나타난 것도 이러한 정책 효과의 초기 신호로 해석된다.

중국의 부양책은 글로벌 철강 시장에 두 가지 경로로 작용한다: 1) 직접적인 수요 확대를 통해 철광석·석탄 가격을 끌어올리고, 글로벌 철강 가격의 하방을 지지한다. 과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중국의 4조 위안 인프라 투자 패키지가 세계 철강 가격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슈퍼사이클을 만들었다. 2) 심리적 신호 효과를 제공해 다른 국가들의 감산 압력을 완화한다. 중국 수요가 바닥을 찍고 반등한다는 기대감은 글로벌 철강사들이 휴풍 상태의 고로를 재가동하는 계기가 되며, 결과적으로 글로벌 가동률이 동반 상승한다.

이번 사이클에서 주목할 점은 중국이 단순히 경기부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 측 개혁과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 규제, 탄소 감축 목표, 생산 쿼터 등을 통해 과잉 설비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품질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공급 조절과 수요 부양이 동시에 진행되면, 가격 변동성이 줄어들면서도 가동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해 철강 사이클을 더 길고 안정적인 국면으로 만들 수 있다.

5. 전기로의 증가

다음 사이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구조적 변화는 전기로(EAF) 비중 확대다. 전기로는 고철(scrap)을 주요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철광석·석탄 가격 변동에 대한 민감도가 낮고, 전력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단기간에 재가동이 가능하다. 고로 중심의 생산체계와 달리 전기로는 가동·정지 의사결정이 훨씬 유연하다. 이런 특성은 경기 회복기마다 공급이 민첩하게 반응하도록 만들고, 철강 가격과 가동률의 변동 패턴에도 영향을 준다.

환경 규제 측면에서 전기로의 확대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로는 코크스 사용으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전기로는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탄소국경세(CBAM)나 탄소세가 본격화되는 환경에서 유리한 위치에 선다.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은 저탄소 철강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EAF 및 DRI(수소환원철) 투자를 장려하고 있고, 보조금·세제 혜택·탄소배출권 가격 신호가 결합해 기업의 투자 의사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기로 설비는 투자 리드타임이 1.5~2년으로 고로보다 짧고, 신규 설비 완공 시 수백만 톤 규모의 공급능력이 한 번에 추가된다. 이 때문에 공급 사이클은 여전히 계단식으로 움직이며, 수요 회복 시점에 전기로 가동률이 급격히 올라 가격 급등 구간이 짧지만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즉각적으로 전기로 가동이 확대되어 공급이 늘고, 이로 인해 가격이 다시 안정되는 자기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가격 변동성은 다소 줄어들 수 있지만, 가동률의 피크는 과거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미국과 인도는 2025~2027년에 대규모 EAF 프로젝트가 순차적으로 완공될 예정이다. 미국은 232조 관세와 Buy America 정책으로 국내 전기로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고, Nucor·Steel Dynamics 같은 기업이 루이지애나·앨라배마 등지에서 신규 설비를 건설 중이다. 인도 역시 Tata Steel, JSW Steel 등이 대규모 전기로 증설을 추진하며 향후 글로벌 전기로 생산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철강 공급망의 탄소 배출 강도를 낮추고, 동시에 가동률을 과거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6. 마무리

철강 산업은 여전히 경기순환적 특성을 강하게 갖고 있지만, 현재 사이클은 몇 가지 특이점을 갖고 있다. 보호무역 강화와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고, 긴축 이후 재정지출이 본격화되면서 응축된 수요가 한꺼번에 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전력망 투자라는 새로운 수요 축이 생겼고, 중국이 경기 부양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기로 비중 확대는 공급 반응 속도를 높여 가동률이 과거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할 여지를 만든다.

이런 요인들을 종합하면, 향후 다가올 철강 사이클은 2021~2022년의 사이클보다 더 큰 폭의 가동률 상승을 만들어낼 잠재력이 있다. 가격 측면에서는 원자재·에너지 비용, 탄소 규제 등으로 과거만큼 과격한 초호황이 나오기 어렵지만, 정책과 구조적 투자 덕분에 사이클이 더 길고 안정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PS – 철강만큼은 보호무역이 강화되었으면 강화되었지, 약해지진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이번 철강 사이클은 한국이 제외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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