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를 ‘역사의 관점’이라는 틀에서 바라보면, 이 책은 사실 옳고 그름을 따질 대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강력한 렌즈에 가깝다. 인류의 시작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를 관통해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엄청난 단순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정보는 제한적이고, 남아 있는 기록조차 특정 집단의 시선과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고고학적 증거와 문헌, 통계가 아무리 쌓여도 당시 상황을 100%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조건에서 쓰인 거시 역사서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관점을 선택하게 되고, 그 선택이 곧 책의 설득력과 한계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총균쇠가 선택한 관점은 지리와 환경이다.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격차를 인간 집단의 우열이나 문화적 특성에서 찾지 않고, 자연 조건이 만들어낸 초기 확률의 차이에서 찾았다. 어떤 지역에 가축화 가능한 동물과 작물이 있었는지, 대륙의 형태가 확산에 유리했는지, 병원균이 어떻게 축적되고 전파되었는지가 이후 수천 년의 격차를 만들어냈다는 설명이다. 이 관점은 인류 초기 국면을 이해하는 데 꽤 유용하다. 아직 국가도, 제도도, 복잡한 기술 체계도 없던 시점에서는 인간의 의지나 선택보다 환경이 제공한 조건이 훨씬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총균쇠는 바로 이 구간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왜 출발선이 달랐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관된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설명은 의도적으로 많은 것을 내려놓는다. 인간을 역사의 주체라기보다는 환경에 반응하는 존재로 그리는 경향이 강하다. 농업이 시작되고 잉여가 생기며 인구가 늘어나는 과정은 지리적 조건의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묘사되고, 이후의 기술 축적과 국가 형성도 그 연장선에서 설명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선택, 권력 투쟁, 제도의 설계 같은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린다. 그래서 총균쇠는 “왜 문명이 생겨났는가”에는 강하지만, “왜 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결과가 나왔는가”라는 질문에는 점점 설명력이 떨어진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으로 떠오르는 책이 국가의 부와 빈곤이다. 총균쇠와 달리 지리를 배경으로 두고, 전면에 인간을 끌어올린다. 특히 권력을 가진 집단이 어떤 제도를 만들었고, 그 제도가 누구에게 이익을 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같은 땅, 같은 기후, 같은 자원을 두고도 결과가 갈라진 사례들을 통해, 역사의 분기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관점에서는 국가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가진 인간 집단의 산물로 보인다.
두 책의 차이는 결국 역사에서 무엇을 변수로 삼느냐의 차이다. 총균쇠는 환경을 주요 변수로 삼고, 인간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로 다룬다. 국가의 부와 빈곤은 인간을 주요 변수로 삼고, 환경은 제약 조건 정도로 다룬다. 어느 쪽이 더 맞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류 전체를 길게 놓고 볼수록, 특히 근대 이후로 갈수록 인간의 선택과 제도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 항구가 있다고 해서 무역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자원이 많다고 해서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다. 같은 조건에서도 전혀 다른 경로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지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역사 전반을 놓고 보면, 거시 서사는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순간, 수많은 예외와 특수성은 정리되거나 생략된다. 그 과정에서 오류도 생기고, 과도한 일반화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책들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관점을 어떻게 쓰느냐다. 역사를 신념이나 정답의 목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고는 굳어지지만, 여러 관점 중 하나의 렌즈로 받아들이면 사고의 폭은 넓어진다.
결국 역사는 객관적인 재현이라기보다는 해석의 집합에 가깝다. 정보가 부족한 구간일수록 해석의 비중은 커지고, 해석은 관찰자의 문제의식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맞다, 저 책이 틀리다”라는 접근보다는, “이 관점은 어떤 상황에서 유용한가”를 따져보는 태도가 더 생산적이다. 총균쇠는 출발선과 구조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고, 국가의 부와 빈곤은 분기점과 인간 선택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둘은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층위를 설명한다.
이렇게 보면, 역사를 읽는 행위는 지식을 쌓는 일이라기보다 사고 도구를 고르는 일에 가깝다. 어떤 렌즈는 구조를 보게 하고, 어떤 렌즈는 인간을 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렌즈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른 관점을 불러올 수 있는 유연성이다. 총균쇠를 ‘역사의 관점’에서 다시 보면, 이 책은 인류사를 단순화한 오류 많은 설명이기 이전에, 출발 조건이라는 문제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하나의 사고 실험처럼 보인다. 그 실험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답을 전부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결국 남는 결론은 단순하다. 역사는 어쩔 수 없이 관점의 집합이고, 우리는 그중에서 지금의 판단과 사고에 가장 유용한 관점을 선택할 뿐이다. 총균쇠는 그 선택지 중 하나이고, 매우 강력하지만 동시에 제한적인 렌즈다. 그 한계를 인식한 채 읽을 때, 이 책은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PS – 2차 자료는 사실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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