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에게 유동성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문장은 처음 들으면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시장에서 유동성은 너무 자주, 너무 강하게 언급되어 왔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유동성이 줄고,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유동성이 늘며, 그에 따라 주식 시장이 오르내린다는 설명은 이제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설명은 주로 시장 전체를 설명하는 데 쓰일 뿐, 개별 투자자의 의사결정에는 생각보다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특히 투자라는 행위를 트레이딩과 구분해서 바라본다면, 유동성의 중요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유동성은 기본적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정확히 말하면 가격의 속도와 진폭에 영향을 준다.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매수와 매도가 쉽게 연결되고, 작은 정보에도 가격이 빠르게 반응한다. 반대로 유동성이 줄어들면 매수자는 줄고 매도자는 늘어나며, 주가는 전반적으로 하방 압력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다만 이 사실이 곧바로 ‘유동성이 중요하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투자자가 궁극적으로 신경 써야 할 대상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이기 때문이다.
트레이딩에서는 유동성이 매우 중요하다. 매수와 매도의 타이밍, 호가 간격, 거래량, 변동성은 모두 유동성과 직결된다. 짧은 시간 안에 사고파는 행위에서는 시장에 돈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가 수익과 손실을 가른다. 하지만 투자는 다르다. 투자는 특정 시점의 가격을 맞히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의 가치가 드러나는 과정을 기다리는 행위에 가깝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시장에 돈이 얼마나 도는지가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다.
유동성이 줄어들면 시장 전체는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때 모든 기업이 동일한 이유로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기업의 펀더멘털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도 주가가 빠진다. 이는 기업 가치가 훼손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위험을 줄이려 하거나 현금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동성 축소 국면의 하락은 ‘가치 훼손’이 아니라 ‘가격 조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구분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유동성이 줄어드는 국면에서도 주가가 오르는 기업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업들은 흔히 업황이 개선되고 있거나, 실적이 턴어라운드하는 초기 국면에 놓여 있다. 시장 전체로 보면 돈은 빠져나가고 있는데,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서는 오히려 이익의 방향성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 주가는 유동성보다 업황을 따른다. 시장에 돈이 많아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이익이 달라졌기 때문에 오른다.
이 현상은 특히 사이클 산업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원자재, 에너지, 운송, 산업재 같은 분야에서는 유동성보다 수급과 가동률, 가격 결정력이 훨씬 중요하다. 업황이 바닥을 찍고 재고가 정상화되기 시작하면, 실적은 아직 바닥에 머물러 있어도 주가는 먼저 움직인다. 이때 시장은 현재의 숫자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본다. 유동성이 풍부하지 않아도, 심지어 시장 전체가 하락하고 있어도 이런 기업들의 주가는 올라간다. 이는 예외처럼 보이지만, 사실 구조적인 현상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유동성의 역할은 더 명확해진다. 유동성은 평균을 설명하지만, 알파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유동성은 시장 전체를 끌어올리거나 끌어내릴 수는 있어도, 개별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투자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구간은 대부분 평균에서 벗어난 지점, 즉 가격이 가치보다 과도하게 낮아졌거나, 가치의 방향이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구간이다. 이 구간은 유동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유동성을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동성은 가격이 언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투자자는 유동성을 ‘참고 변수’로는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유동성을 중심에 놓는 순간, 투자자는 시장을 예측하려는 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는 투자라기보다는 트레이딩에 가까워진다. 반대로 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중심에 놓으면, 유동성은 자연스럽게 부차적인 요소로 밀려난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해야 할 점이 있다. 시장의 유동성과 기업의 유동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기업 내부의 현금 흐름과 재무적 여력은 투자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업황이 좋아져도, 기업이 그 시간을 버틸 현금이 없다면 주주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는 중앙은행의 유동성이나 시장 자금 흐름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투자자가 중요하게 봐야 할 유동성은 이쪽이지, 시장 전체의 돈의 양이 아니다.
결국 투자란 가격과 가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유동성은 가격을 흔들 수 있지만,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면, 주가는 결국 기업이 만들어내는 이익과 현금흐름, 자산의 질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유동성은 소음을 만들 수는 있어도, 결론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래서 투자자에게 유동성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유동성은 시장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기업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투자자가 집중해야 할 것은 시장이 아니라 기업이고, 돈의 흐름이 아니라 이익의 흐름이다. 유동성이 줄어들어도 가치가 커지는 기업은 존재하고, 유동성이 넘쳐나도 가치가 없는 기업은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유동성이 아니라, 이 단순한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다. 가격이 흔들릴 때 가치에 집중하는 것, 시장의 소음보다 기업의 방향을 신뢰하는 것, 이게 가능해지는 순간 유동성은 더 이상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투자자는 파도를 예측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안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에 가깝다.
PS – 리루의 말처럼, 마켓은 트레이더의 공간이지 투자자의 공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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