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시장에서 흔히 통용되는 격언 중 하나는 눈에 보이는 자산이 있는 기업이 안전하다는 믿음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기업처럼 실체가 모호한 코드로 이루어진 사업체보다 공장, 기계, 토지 같은 이른바 하드 에셋을 보유한 기업이 도산 시 투자금을 회수하기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실제 파산 시나리오와 자산의 속성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피상적인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인 자산 회수의 관점에서 볼 때 하드 에셋은 투자자에게 약속된 안전판이 아니라, 오히려 회수 가능성이 낮은 신기루로 변질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재무제표에 기재된 장부 가치는 자산의 실질적인 청산 가치를 전혀 대변하지 못한다. 회계적 관점에서 자산은 취득 원가에서 매년 일정 비율의 감가상각을 제외한 금액으로 기록되지만, 이는 기업이 계속해서 영업을 지속한다는 계속기업의 가정을 전제로 한 숫자일 뿐이다. 기업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 즉 청산 단계에 돌입하면 장부상의 숫자는 의미를 잃고 오로지 시장에서의 매각 가능성만이 유일한 잣대가 된다. 이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장부 가치와 청산 가치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다. 평상시 가동 중인 설비는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이지만, 가동을 멈춘 설비는 즉시 고철이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자산의 회수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자산의 특수성이다. 특정 산업이나 특정 공정에만 최적화된 고도의 전문 설비는 범용성이 극도로 낮다. 예를 들어 반도체 미세 공정 장비나 특수한 화학 플랜트 설비는 해당 공정을 수행하는 기업이 아니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만약 해당 기업이 도산했다면, 그 이유는 대개 업황의 악화나 기술적 도태인 경우가 많다. 이 상황에서 동일한 설비를 사줄 수 있는 유력한 후보인 경쟁사들 역시 같은 산업적 위기를 겪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결국 수요자는 없는데 공급만 시장에 급매로 쏟아지는 불균형이 발생하며, 이는 자산 가격의 수직 낙하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상관관계의 저주와 맞닿아 있다. 기업의 파산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사이클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하드 에셋이 풍부한 장치 산업에서 특정 기업이 무너진다는 사실은 이미 해당 산업의 공급 과잉이나 수요 급감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이때 매각하려는 하드 에셋의 가치는 산업 전체의 불황과 동행하여 급락한다. 투자자가 안전마진이라고 믿었던 공장 부지나 기계 장치가 정작 돈이 필요한 시점에는 아무도 사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산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그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는가가 회수의 본질이다.
회수 과정에서 주주가 직면하는 변제 우선순위 역시 하드 에셋의 허상을 드러낸다. 자산이 매각되어 현금이 유입되더라도 그 돈이 일반 주주에게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험난하다. 법적 파산 절차에서는 가장 먼저 파산 관재인의 수수료와 변호사 비용 같은 공익 채권이 빠져나간다. 그다음은 미지급 임금과 세금이 우선하며, 실질적인 자산 매각 대금의 대부분은 담보권을 설정한 은행이나 금융기관의 몫으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하드 에셋 기업은 자산을 취득할 때 대규모 대출을 수반하기 때문에, 매각 대금이 부채 규모를 넘어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무담보 채권자조차 원금의 일부만 건지는 상황에서 주주가 하드 에셋을 근거로 자산을 회수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자산의 유지 비용 또한 회수 가치를 갉아먹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서버를 폐쇄하는 것으로 추가적인 비용 발생을 차단할 수 있지만, 하드 에셋 기업은 파산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막대한 고정비를 지불해야 한다. 거대한 공장 부지를 관리하기 위한 보안 인력, 기본적인 유지 보수 비용,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한 정화 비용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노후화된 화학 설비나 제철 설비를 철거할 때 발생하는 환경 정화 비용은 때때로 자산 매각 대금보다 커지는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발 부채는 장부에 명시되지 않다가 청산 시점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며 투자자의 기대를 꺾어버린다.
반면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인식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드 에셋이 없다는 이유로 회수 가치가 전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형 자산의 실질적 전이 가치를 간과한 결과다. 소프트웨어 기업이 보유한 소스 코드, 고객 데이터베이스, 브랜드 인지도, 사용자 네트워크는 물리적인 형태는 없지만 다른 기업에 인수되었을 때 즉각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고가치 자산이다. 소프트웨어 자산은 하드 에셋과 달리 물리적인 운송 비용이나 환경 정화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기존 시스템에 이식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데이터 가치가 뛰어난 기업은 설령 법인 자체가 도산하더라도 핵심 자산을 탐내는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하드 에셋 기업보다 오히려 높을 수 있다.
결국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자산의 물리적 형태가 아니라 자산의 범용성과 시장성이다. 진정으로 회수가 가능한 자산은 어떤 환경에서도 다른 주인의 손에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산이다. 도심의 핵심 입지에 위치한 오피스 빌딩은 산업군에 관계없이 수요가 존재하므로 하드 에셋 중에서도 회수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특정 공정에만 종속된 설비는 아무리 거대하고 비싼 장비라 할지라도 청산 시점에는 부채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자산의 존재 유무보다 자산이 가진 가치의 독립성이 회수 가능성을 결정짓는 잣대가 되어야 한다.
실질 청산 가치를 분석할 때는 재생산 원가와 비교하는 관점도 필요하다. 만약 강력한 환경 규제나 부지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새로운 공장을 짓는 것이 불가능한 산업이라면, 기존 기업이 가진 하드 에셋은 단순한 기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진입 장벽으로서의 자산 가치를 의미하며, 이런 경우에는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자산의 희소성 덕분에 높은 가격에 매각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기술 진보가 빨라 기존 설비가 순식간에 구식이 되는 산업에서는 장부상의 하드 에셋은 그저 사라져야 할 잔재에 불과하다. 기술의 유효 수명이 자산의 회수 기간보다 짧다면 그 자산은 결코 안전마진이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하드 에셋 보유 여부가 기업 도산 시 자산 회수를 보장한다는 논리는 대단히 위험한 일반화다. 장부상의 숫자에 현혹되지 않고 자산이 처한 산업적 맥락, 변제 우선순위, 자산의 범용성, 그리고 숨겨진 유지 비용을 입체적으로 분석해야만 실질적인 청산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투자자에게 진짜 안전한 자산은 눈에 보이는 기계 장치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장성 있는 자산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이든 하드 에셋 기업이든 비즈니스 구조와 자산의 속성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안전마진이라는 이름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기업 분석의 단계에서부터 기업의 질적 측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해당 자산이 업계 공용 표준에 부합하는지, 중고 시장에서의 거래가 활발한지, 아니면 오직 그 기업만이 다룰 수 있는 특수한 유물인지 구분하는 능력이 투자자의 실질적인 수익과 원금을 지켜주는 방패가 된다. 형태가 있느냐 없느냐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리고, 자산이 가진 경제적 효익이 파산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보존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가치 투자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실질 청산 가치는 재무제표 안이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현장의 수요와 공급 속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S – 계산이 안되는 투자처는 투자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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