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이후의 원유 시장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정학적 위기가 해제되었을 때 원유 가격이 전고점을 넘어 더 가파르게 폭등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미국의 전략비축유 고갈에 따른 강제적 재구축 수요와 미국 셰일 오일의 생산 구조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장기 봉쇄 기간 소진된 서방 국가들의 비축유 창고를 다시 채워야 하는 의무적 수요가 일시에 유입되면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논리다. 여기에 더해 공급의 완충재 역할을 해야 할 미국 셰일이 과거처럼 기민하게 증산하기 어려워진 상황이 겹치면 유가의 2차 오버슈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글로벌 원유 시장의 핵심 축인 원유의 성상별 수급 역학과 산유국들의 정치공학적 행동 양식을 반영하지 못한 접근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 해제 이후의 실질적인 수급 동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총량의 개념을 넘어 고유황 중질유와 저유황 경질유라는 품질 차이와 산유국들의 전후 행동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해협이 재개방되는 시점이 오면 중동 국가들과 러시아는 전쟁과 대치로 피폐해진 국가 재정을 복원하고 무너진 시장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 가동 가능한 모든 유전을 돌려 공급 총량을 늘리는 각자도생의 증산 기조로 급격히 선회할 가능성이 크고, 봉쇄 해제 이전에도 그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의 오펙 탈퇴 흐름이나 전통적 감산 합의의 균열은 이러한 산유국들의 본능적인 생존 전략을 대변한다.

중동의 증산 기조가 본격화되면 시장에는 그동안 묶여 있던 고유황 중질유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중질유의 대량 공급은 이 성상의 가격과 정제 마진을 하락시키는 강력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반면 미국 셰일 오일이 주축이 되는 저유황 경질유 시장은 다른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될 수 있다. 봉쇄 기간 중 중동발 공급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 셰일 기업들은 단기 증산에 집중했다. 문제는 이러한 단기 과속 시추가 미국의 경질유 생산 능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성장판을 닫아버리는 도화선이 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셰일 분지인 퍼미안 등에서 비용 대비 생산성이 가장 높고 파기 쉬웠던 알짜배기 1등급 부지들은 지난 10여 년간의 대규모 붐을 거치며 이미 대부분 소진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우량 부지마저 이번 봉쇄 기간 동안 단기 증산을 위해 무리하게 먼저 파헤쳐 썼다면 미국의 경질유 공급을 지탱하던 핵심 재고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셰일 유전 고유의 물리적 한계가 겹친다. 전통 유전과 달리 셰일 유전은 시추 후 불과 1~2년 만에 초기 생산량의 60~80%가 급감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초기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과속 시추를 감행할수록 지하 압력은 더 수직으로 떨어진다. 즉, 현재의 전체 생산량을 그저 유지하는 데만도 끊임없이 새로운 우물을 파 내려가야 하지만, 이제 셰일 기업들이 발을 디뎌야 하는 곳은 원유 매장 밀도가 떨어지고 점토 함량이 높아 시추 난이도가 극도로 높은 2등급, 3등급 외곽 지역이다. 예전과 똑같은 자본과 장비를 투입하더라도 건질 수 있는 원유의 양이 물리적으로 떨어진다는 의미다. 더욱이 현재 퍼미안 분지의 핵심 부지들은 엑손모빌이나 셰브론, 옥시덴탈 같은 거대 석유 자본의 손으로 완전히 넘어간 상태다. 이 대기업들은 자금 유동성이 풍부하여 유가가 일시적으로 출렁인다고 해서 무작정 시추기를 늘려 과잉 생산을 유도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주주 환원과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외곽 부지를 파기 위해 무리하게 자본지출을 늘리는 것은 주주들의 반발을 사기 때문에 이들은 증산보다 현상 유지를 택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전개는 시장에 중질유는 넘쳐나고 경질유는 예전만큼 풍족하지 않은 타이트한 균형 상태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이 시점에서 미국 셰일 업계가 보유한 재수압파쇄법이 경질유의 공급 감소를 막아줄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재수압파쇄법의 전면적인 도입을 가로막는 본질적인 걸림돌은 손익분기점 같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의 물리적 위험과 자원의 한계에 기인한다. 이미 촘촘하게 밀집해 있는 셰일 분지에서 낡은 유정에 다시 초고압의 액체를 불어넣으면 그 압력이 인근에서 정상 가동 중인 최신 유정의 암반 구조까지 간섭하는 수압파쇄 간섭 현상이 발생한다. 자칫 잘못하면 멀쩡한 기존 자산과 생산성까지 통째로 망가뜨릴 수 있으므로 기업들은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더욱이 최근 시추된 유정들은 초기 단계부터 최신 다단계 기술로 지하의 매장량을 한 방에 끝까지 쥐어짜 냈기 때문에 재수압파쇄를 해봐야 더 나올 알맹이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장의 고압 펌프 장비와 특수 자재를 조달할 서플라이 체인의 누적된 병목까지 감안하면 재수압파쇄법은 급격한 감산율을 방어하는 기전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즉, 낮은 비용 구조라는 유인책이 존재하더라도 기술을 전면 가동할 수 없다는 물리적 불확실성이 본질적인 바리케이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질유의 타이트한 수급이 전체 원유 가격의 2차 폭등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미국의 경질유 생산량 자체가 한순간에 뚝 떨어질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미국 셰일이 1등급 부지의 고갈과 과속 시추의 대가로 인해 수요 증가에 맞춰 공급을 추가로 늘려줄 성장판이 닫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추가 증산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일 뿐, 기존에 구축된 거대한 생산 기반이 통째로 무너진다는 뜻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이미 퍼미안 분지의 핵심 유정들은 대규모 자본력과 장기 포트폴리오를 갖춘 글로벌 거대 석유 자본의 손으로 넘어가 재편되어 있으며, 이들은 기술적 고도화를 통해 하루 1,300만 배럴 안팎의 현재 생산량을 장기간 끈질기게 유지할 수 있는 펀더멘탈을 확보하고 있다. 즉, 경질유 시장은 예전처럼 기름이 흔하게 넘쳐나던 과잉 공급의 시대를 끝내고 수급이 다소 빡빡하게 유지되는 타이트한 균형 상태로 진입하는 것일 뿐, 전 세계 수급에 치명적인 공백을 유발할 만큼 공급 총량이 수직 낙하하는 극단적인 쇼티지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해 호르무즈 해협 해제 이후 밀려들 중동과 러시아의 중질유 증산 물량이 원유 시장의 절대적인 총량 파이를 든든하게 채워주기 때문에, 경질유의 빡빡함이 전체 유가를 끌어올리는 인장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 및 중기적인 유가 하향 안정화 흐름이 옥시덴탈의 비키 홀럽이 경고한 중장기적 원유 부족 시나리오의 무력화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비키 홀럽의 경고와 해협 해제 이후의 유가 안정화는 서로 충돌하는 모순이 아니라 시간축에 따라 순차적으로 고리를 물고 전개되는 연쇄 반응이다. 비키 홀럽이 강조한 논리의 핵심은 단순히 지질학적인 매장량의 완전한 고갈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에너지 업계 전반에 누적된 만성적인 전통 대형 유전 투자 결핍이 초래할 시간의 덫이다. 2014년 유가 폭락과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압박으로 인해 자본은 개발에 5~10년이 소요되는 심해 유전 탐사를 방치해 왔고, 미국 셰일이 일시적으로 그 공백을 메워왔을 뿐이다. 해상 유전의 기술적 손익분기점이 낮아지고 브라질이나 가이아나 등 일부 지역에서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는 기존 노후 유전들의 자연 감산분을 간신히 보충하는 수준에 불과하여 글로벌 수요의 구조적 증가를 완전히 감당하기 어렵다.

더욱이 해협 해제 이후 중동과 러시아가 재정 확보를 위해 감행할 과격한 증산은 역설적으로 미래의 가용 매장량을 단기에 쥐어짜 쓰는 결과를 낳아 유전의 노후화와 압력 저하를 더욱 가속화한다. 신규 대형 프로젝트의 투자 부재 속에서 기존 자산을 무리하게 소진하며 버틴 대가는 2020년대 후반에 접어드는 순간 원유 시장에 고스란히 청구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시기에 도래할 구조적 위기는 공급의 완전한 중단이나 절대량의 제로 수렴이라는 파국적 쇼티지라기보다는, 새로운 원유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물리적, 지질학적, 정치적 손익분기점의 베이스라인 자체가 계단식으로 높아지는 현상으로 발현될 것으로 예상한다.

PS – ‘정확한’ 가격을 예측하기 위해선 수요 사이드도 봐야겠지만, 수요 사이드는 변수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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