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버핏의 주주서한을 읽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사람은 많지만, 좋은 길을 오래 걷는 사람은 드물다.

1. 소중한 인연

워렌 버핏이 마지막 추수감사절 서한에서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돈이나 주식이 아니었다. 버핏이 회고한 것은 오마하의 의사, 어릴 적 친구,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찰리 멍거, 언론인 스탠 립시, 코카콜라의 도널 키오 같은 이름들이었다. 버핏에게 그들은 모두 삶의 일부였던 인연들이었다. 버핏의 인생은 수많은 숫자와 기업, 그래프 위에 놓여 있었지만 강조한 건 언제나 사람의 이름이었다.

버핏은 늘 “나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의미뿐 아니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뜻이다. 찰리 멍거와의 60년은 버핏의 사고를 완전히 다른 단계로 올려놓았고, 주변의 인물들은 버핏을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2. 새로운 CEO

버핏은 올해를 끝으로 그렉 에이블에게 자리를 넘긴다. 그렉은 이미 20년 가까이 버크셔의 핵심 사업들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버핏은 그를 “honest communicator, tireless worker, and great manager”라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건, 이 문장에는 흔한 수식어가 없다.

버핏은 에이블을 새로운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지만, 그를 신뢰했다. 신뢰란 지도자의 언어에서 가장 강한 형태의 권위다. “나는 그를 믿는다”는 한 문장은 어떤 문장보다 무겁다. 버핏은 후계 문제를 오래 숨기거나 신비화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이미 버크셔의 정신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한 경영 승계가 아니라 철학의 계승을 의미한다. 버핏은 회사를 물려주는 게 아니라, 사고의 틀을 이어주는 일을 택했다.

3. 버크셔의 구조적 강점

버크셔의 내재 가치는 단순히 투자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의 기반 인프라를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구조적 기업 생태계에 가깝다. 버크셔가 가진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간이 자산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그 구조는 철도, 보험, 에너지라는 세 개의 축 위에서 작동한다.

철도(BNSF)는 미국 대륙의 혈관이다. 고속도로와 항공망이 존재하더라도, 대륙을 가로지르는 수송의 뼈대는 여전히 철도다. 트럭보다 연료 효율이 높고, 대량 수송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탄소 규제 강화 속에서도 오히려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전력화된 물류 체계의 필요성이 커지고, 철도는 그 구조적 전환의 중심에 있다. 리쇼어링, 데이터센터 건설, 전력 인프라 확충—BNSF는 단순한 운송업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 시대의 물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보험은 또 다른 축이다. 인간 사회가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위험을 가격화하고 이전하는 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손해보험, 재보험, 특수위험보험 등에서 버크셔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보험은 단순히 손익을 내는 사업이 아니라, 자본의 원천이다. 보험료를 먼저 받고 손해를 나중에 지급하는 구조 덕분에, 버크셔는 매년 막대한 플로트를 장기·무이자 자본으로 운용할 수 있다. 이는 세계 어느 금융기관보다 유리한 내부 자금 구조다.

세 번째 축은 에너지다.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BHE)는 이미 미국 전력망의 핵심 사업자 중 하나로, 전력 생산·송배전·재생에너지·천연가스 인프라까지 포괄한다. 이 사업의 가치는 단순히 전력 판매에 있지 않다. 에너지는 현대 산업의 ‘입구’이자 ‘속도 제한 장치’다. 버크셔는 이를 민간 자본의 형태로 장악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전력 안정성을 직접 지탱하는 회사가 되었다.

재생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BHE는 이미 풍력·태양광 자산을 대규모로 보유하며 전력 포트폴리오를 탈탄소화하고 있다. 동시에 송전망 확충과 에너지저장(ESS) 부문에서도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 이 구조는 버크셔가 단순한 투자회사가 아니라, 국가 단위의 인프라 운영체제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세 사업에는 공통된 속성이 있다: 1) 네트워크 기반의 독점성. 철도는 물리적 네트워크, 보험은 확률적 네트워크, 에너지는 전력망 네트워크로 구성된다. 2) 규모의 경제와 자본의 복리성. 고정비는 크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단가가 급격히 낮아지고 이익률이 누적된다. 3) 시간에 대한 내성. 단기 변동이 아니라 세대 단위의 복합 수익이 작동한다.

4. 모방

버핏이 남긴 조언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문장은 “Get the right heroes and copy them.”이다. 버핏은 모방을 지적 게으름으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지적 겸손의 출발점이라 여겼다. 버핏에게 모방은 창조의 대체물이 아니라, 진리를 좇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인간은 모든 경험을 직접 겪을 수 없고, 모든 실수를 스스로 반복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올바른 대상을 선택하고, 그들의 사고를 내면화하는 일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지혜의 복제 과정이다.

찰리 멍거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 멍거는 “Take a simple idea, and take it seriously.”라 말했다. 그들이 강조한 건 복잡한 전략이 아니라, 단순한 원칙을 진지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었다. 버핏과 멍거의 철학은 ‘새로운 길을 찾자’가 아니라, ‘검증된 길을 더 깊이 걷자’였다. 지적 탐험가이기보다, 사유의 채굴자에 가까웠다. 이미 존재하는 사상과 사람 속에서 진주를 찾고, 그것을 자신의 문장으로 다듬었다.

이 태도는 투자뿐 아니라 삶에도 적용된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지만, 올바른 모델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결국 닮아간다. 버핏이 젊은 투자자들에게 “톰 머피를 모방하라”고 말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론이나 원칙보다, 모범적인 사람을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버핏은 언제나 “좋은 생각은 새로 발견되기보다, 오래된 생각이 새롭게 이해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고 말했다. 버핏의 모방은 단순한 따라하기가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관찰과 자기화의 연속이었다. 타인의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타인의 실수를 통해 배웠으며, 타인의 덕목을 통해 스스로를 정제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닮는 것’을 넘어, 타인의 지혜를 재조합해 자신만의 통찰로 바꾸는 창조적 모방이다.

5. 복원력

버핏의 편지 후반부에서 많은 언론과 인플루언서들이 오해한 대목이 있다. “버크셔 주가는 60년 동안 세 번 50% 하락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50% 하락을 예견하고 있다”는 식으로 인용했다. 그러나 그 문장은 예언이 아니라 회고와 경고다. 버핏이 말하고자 한 건, “시장은 언제나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핵심은 하락이 아니라 회복이다. 자본주의의 진짜 강점은 ‘성장’이 아니라 ‘복원력’이다. 시장은 무너지고 기업은 쇠퇴하지만, 시스템은 다시 균형을 찾는다. 그 복원 구조 덕분에 미국 자본주의는 수많은 위기를 통과했다. 파산은 끝이 아니라 재조정의 시작이었고, 침체는 자본 재배분의 신호였다.

버핏은 “Don’t despair; America will come back and so will Berkshire shares.”라고 말한다. 이는 낙관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신뢰다. 시장에는 언제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미리 인정한 사람만이 공포에 흔들리지 않는다. 버핏이 반복해서 강조한 건 예측이 아니라 태도였다.

6. 마무리

이번 버핏의 서한은 인생 철학의 압축본에 가깝다. 인연을 떠올리며 인간의 온기를 남겼고, 새로운 리더를 언급하며 신뢰의 무게를 보여줬다. 또한 철도와 보험 그리고 에너지라는 산업의 지속성을 통해 자본주의의 구조적 깊이를 드러냈고, ‘올바른 모방’과 ‘복원력’이라는 두 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남겼다.

버핏의 문장은 숫자보다 단단하고, 철학보다 실용적이다. 버핏은 투자자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관찰자이자 실천자였다. 버핏이 보여준 건 성공의 방식이 아니라, 존재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 태도는 결국 이렇게 요약된다.

  •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라.
  • 신뢰할 수 있는 리더에게 자리를 내줘라.
  • 오래가는 산업을 사랑하라.
  • 현명한 사람을 모방하라.
  • 흔들려도 다시 일어서는 구조를 믿어라.

버핏은 평생 숫자를 다루었지만, 남긴 건 숫자가 아니라 사람, 신뢰, 시간이었다. 그 세 가지는 여전히 버크셔의 핵심 자산이자, 그의 철학이 세상에 남긴 가장 오래된 배당금이다.

PS – 찰리 멍거도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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