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에 공개된 하워드 막스의 메모 ‘AI Hurtles Ahead’는 기술 자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새로운 기술을 대하는 투자자의 태도와 사고 방식에 관한 기록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번 메모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80세에 가까운 오랜 투자자가 최신 기술을 직접 경험해보고, 그 경험을 기존의 투자 철학 위에 얹어 해석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술 논평과는 결이 다르다.
막스는 AI를 이론이나 간접 정보로 접근하지 않았고, 직접 사용해본 뒤,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추론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인간의 사고 과정과 상당히 닮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드렸다. 지식 입력, 패턴 인식, 논리 구성, 결과 제시라는 흐름은 인간의 인지 과정과 겉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막스는 인간과 AI가 유사한 방식으로 추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판단의 결괏값에 대한 책임이 AI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핵심적인 차이로 남겨두었다. AI는 가설을 만들고 논리를 구성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감당하지 않는다. 투자라는 행위는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포함하는 구조를 가진다. 이 차이는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에 가깝다. 인간과 AI는 결과물의 형태에서는 유사해질 수 있지만, 의사결정의 무게를 나누어 갖지 않는다. 나아가 투자 영역에서는 여전히 AI보다 뛰어난 인간 투자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 근거는 AI의 계산 능력이나 논리 구성 능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투자 판단에는 정량적 정보 처리 외에도 경험, 직관, 환경에 대한 해석, 그리고 책임을 동반한 선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즉, AI는 주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지만,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과정까지 수행하지는 않는다.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시각 역시 이러한 태도를 반영한다. AI 기술의 탁월함과 전례 없는 확산 속도를 인정함과 동시에 현재 시장이 그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규모가 언제 공급 과잉으로 전환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기술이 진짜라는 사실과 투자 타이밍의 적정성은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AI가 가져올 변화가 실제일 가능성은 높지만, 그 변화에 대한 자본 투입이 적정한지 여부는 사전에 확정할 수 없다. 이는 기술의 미래를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이클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여기서 드러나는 특징은 예측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자세다. 인간도 AI도 버블을 사전에 식별할 수 없다. 버블은 지나간 뒤에야 정의된다. 따라서 기술의 방향성을 신뢰하면서도, 자본의 흐름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 균형이 유지된다. 이는 기술 낙관과 투자 절제 사이의 간극을 관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AI가 노동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언급도 같은 맥락을 따른다. 일자리 구조가 크게 변화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그 변화의 구체적 형태에 대해서는 단정하지 않는다. 지인의 사례를 통해 변화를 가볍게 소개하는 방식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결과를 확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기술이 만들어낼 사회적 변화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관찰의 영역에 가깝다.
필자는 AI가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이 사고를 위임해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AI와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고 프레임을 더욱 명확히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AI는 지식을 정리하고 논리를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묻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다. AI가 제시하는 판단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해석하고 선택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막스가 강조한 책임의 문제는 결국 이 지점으로 이어진다.
투자는 판단과 결과, 그리고 책임의 연쇄 위에 놓여 있다. AI는 그 중 일부 과정을 돕거나 강화할 수 있지만, 전체를 대체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번 메모는 기술의 가능성보다도, 인간이 어떤 태도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AI의 존재는 사고를 줄여주는 계기가 아니라, 오히려 사고의 구조를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는 요구로 읽힌다.
PS – 난 저렇게 멋있게 늙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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