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막스의 2026년 4월 메모인 ‘What’s Going on in Private Credit?’는 금융 시장의 한 축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사모 대출 시장에 대해 매우 시의적절하고도 날카로운 경고를 던진다. 최근 몇 년간 사모 대출 시장이 보여준 폭발적인 성장은 단순히 자본의 이동을 넘어 금융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해 왔다. 막스는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 숨겨진 취약성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적인 리스크가 무엇인지 묻는다. 특히 이번 메모는 과거 그가 강조했던 거대한 변화라는 맥락 위에서 사모 대출이라는 특정 자산군이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해부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사모 대출 시장이 이토록 거대해진 배경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가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인 채권 시장에서 만족스러운 수익을 얻지 못한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사모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그 결과 직접 대출 시장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자산 운용사들에게는 거대한 기회였으나 동시에 시장의 성숙도를 앞지르는 과잉 유동성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막스는 현재 이 시장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운용사가 진정한 의미의 신용 사이클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점을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로 지목한다. 금융위기 이후의 대호황기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기업의 현금흐름이 경색되는 혹독한 환경에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시장에 자금이 넘쳐나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는 운용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다. 더 많은 자금을 집행하기 위해 운용사들은 대출 조건을 완화하는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며 이는 이른바 코버넌트 라이트 론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대출자에게 부여되던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사라진 상태에서 실행된 대출은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할 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막스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안전성을 희생하며 수익을 쫓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사모 대출이 사모펀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의 부채를 사모 대출이 담당하는 구조 속에서 두 시장의 운명은 하나로 묶여 있으며 이는 특정 섹터의 위기가 전이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한다.
하지만 사모 대출 시장의 위기가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전면적인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의 위기가 투명성이 결여된 복잡한 파생상품과 과도한 레버리지의 결합으로 발생했다면 현재의 사모 대출은 상대적으로 대출 구조가 단순하고 이해관계자가 명확하다는 특성이 있다. 또한 시장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조정이 이루어졌으며 붕괴 예상 금액이 실제보다 과대계상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다양한 해지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시스템 전체의 연쇄 부도를 막아주는 방어막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붕괴보다는 부실한 자산과 운용사가 걸러지는 옥석 가리기의 과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단순히 금융 지표나 거시 경제적 변수만이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전례 없는 변수가 신용 시장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만약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지금처럼 유지되거나 가속화된다면 이는 사모 대출 시장의 특정 섹터에서 국지적인 붕괴를 일으키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금리가 높아서 돈을 못 갚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존립 근거를 상실하는 구조적 파괴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기존 산업의 해자를 순식간에 메워버리고 전통적인 기업들의 수익 창출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면 그 기업에 빌려준 자금의 안전성은 담보할 수 없게 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공지능은 기업의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조기에 퇴보시킬 위험이 크다. 사모 대출의 주요 대상인 중견 기업들 중 상당수는 데이터 처리, 기초 콘텐츠 제작, 단순 중개 서비스 등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업무들은 인공지능이 가장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며 대출 실행 당시 5년 혹은 7년을 내다보고 계산했던 현금흐름 추정치는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재무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전통적인 신용 분석 방식으로는 인공지능이 불러오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이는 곧 대출 심사 단계에서의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지며 결국 예상치 못한 시점에 대규모 부실이 터져 나오는 원인이 된다.
담보 가치의 재산정 문제 또한 심각한 과제다. 기업이 보유한 소프트웨어나 독점적인 운영 노하우, 브랜드 가치와 같은 무형 자산들은 과거에는 강력한 담보 역할을 했으나 인공지능 환경에서는 그 가치가 급격히 희석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기존의 기술력을 범용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더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순간 특정 기업의 자산 가치는 폭락하게 된다. 이 경우 담보인정비율인 LTV가 급상승하게 되고 운용사는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자금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유동성이 부족한 중견 기업들은 이러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크며 이는 해당 섹터의 연쇄적인 신용 경색으로 번질 수 있다.
인공지능에 의한 리스크 전이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시장의 정보 효율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특정 산업군이 인공지능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본은 순식간에 이탈한다. 기업이 변화에 적응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시장의 냉혹한 심판이 내려지는 셈이다. 이러한 국지적 붕괴는 전체 금융 시스템을 무너뜨리지는 않더라도 사모 대출 포트폴리오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에는 충분하다. 결국 우리는 신용 리스크를 평가할 때 재무제표상의 수치를 넘어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얼마나 지속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따져봐야 한다.
금융의 본질은 결국 리스크를 관리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데 있다. 사모 대출 시장이 맞이한 이번 도전은 단순히 금리 사이클의 변화가 아니라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임을 명심해야 한다. 막스의 메모는 우리에게 시장의 호황에 도취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나는 리스크를 끊임없이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파괴적 혁신 속에서 어떤 기업이 살아남아 현금흐름을 유지할 수 있을지 변별해내는 능력이 향후 사모 대출 시장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적인 잣대가 될 것이다. 신중함과 선별적인 접근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만이 이 격동의 시기를 헤쳐 나갈 유일한 길이다.
PS – 현재 금융 사이클은 후반부에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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