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유가가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작성된 글이다. 고유가가 이어질지, 혹은 전쟁이 조기에 종결되며 저유가로 전환될지는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AI 산업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를 단순한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규정하는 시각이다. 현재의 AI 산업은 완성된 형태의 고마진 플랫폼 산업이 아니라, 대규모 물리적 인프라 위에 구축되고 있는 초기 단계의 CAPEX 집약 산업에 가깝다. 데이터센터, 전력 인입, 냉각 시스템, GPU 및 네트워크 장비,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전력망과 부지 개발까지 포함하면, AI는 실물 경제와 깊게 맞물린 산업이다. 이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유가가 AI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고유가는 단순히 전력 요금 상승으로 끝나지 않는다. 원유 가격은 에너지 체인의 앵커로 작용하며, LNG, 석탄, 전력 가격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건설비, 운송비, 소재 가격, 장비 비용까지 광범위하게 자극한다. 결국 AI 산업의 핵심인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과 운영 비용은 모두 상승 압력을 받는다. 이 지점까지만 보면, 고유가는 AI 산업에 명백한 부담 요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단순히 ‘비용이 올라가니 투자가 줄어든다’로 결론 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AI 산업은 일반적인 경기 민감 산업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비용이 상승하는 환경에서도, CAPEX가 쉽게 줄어들지 않는 특이한 구조를 보인다. 이 현상은 세 가지 축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경쟁 구조다. AI는 선점 효과가 매우 강한 산업이다. 데이터, 모델 성능, 인프라 규모는 누적되며, 일정 수준의 격차가 발생하면 후발주자가 이를 따라잡기 어렵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투자 수익률이 다소 악화되는 것보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리스크로 인식된다. 결과적으로 비용 상승은 투자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투자 강행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2) 이미 투입된 자본이다. 데이터센터 부지 확보, GPU 발주, 전력 계약 체결, 조직 구축 등은 모두 되돌리기 어려운 의사결정이다. 이 상태에서 투자를 중단하면 손실이 확정된다. 따라서 기업은 ‘멈추는 것보다 계속 가는 것이 더 싸다’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전형적인 매몰 비용 구조이며, CAPEX를 지속시키는 강한 동인이 된다. 3) 수요에 대한 확신이다. AI는 점점 선택적 기술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생산성 향상, 자동화, 의사결정 효율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며, 산업 전반에 침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AI 수요가 구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을 유지한다. 이 가정이 유지되는 한, 비용 상승은 투자 중단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되면, 고유가 환경에서도 CAPEX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확대되는 구간이 형성된다. 이는 정상적인 산업 사이클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일반적으로는 비용 상승이 투자 축소로 이어지지만, AI 산업에서는 비용 상승이 투자 지속과 동시에 나타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조적 긴장이 발생한다.
이 긴장은 시간과 함께 누적된다. 고유가가 단기 이벤트라면 기존 가정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고유가가 지속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전력 계약이 갱신되고, 신규 프로젝트의 CAPEX가 상승하며, 유지보수 비용과 자본 비용까지 점진적으로 반영된다. 초기에는 ‘감내 가능한 비용 상승’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적 비용 상승’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투자 의사결정의 기준이 점차 압박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이 압박이 곧바로 CAPEX 축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정 구간에서는 반대로 작용할 수 있다. 비용이 상승하고 경쟁이 격화될수록, 기업들은 더 빠르게,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이로 인해 경제성이 약화된 상태에서도 CAPEX가 유지되는 비정상 구간이 형성된다. 이 구간에서 자본은 미래의 불확실한 수익을 현재에 과도하게 선반영하게 된다.
여기서 버블의 조건이 만들어진다. 다만 이는 전형적인 유동성 기반 버블과는 성격이 다르다. 저금리 환경에서 형성되는 버블이 아니라, 고비용 구조 위에서 형성되는 전략 경쟁 기반의 과잉 투자 사이클에 가깝다. 이 경우 버블은 단순히 가격이 높아지는 현상이 아니라, 실제로 비싸게 구축된 자산과 과도한 CAPEX가 동시에 축적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구분은 ‘수요’와 ‘수익성 있는 수요’다. AI에 대한 수요 자체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수요가 충분한 가격을 동반하는지, 즉 투자된 자본을 정당화할 수 있는 현금흐름으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기술 확산 속도와 자본 회수 속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 표면적으로는 성장하는 산업에서도 내부적으로는 수익성 압박이 누적된다.
결국 고유가는 AI 산업을 즉각적으로 멈추게 하는 변수는 아니다. 오히려 일정 기간 동안은 CAPEX를 유지시키거나 심지어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비용 구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이 간극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투자 기준이 변화하고, 그때부터 CAPEX는 비로소 둔화되거나 재조정된다.
따라서 ‘AI 산업은 고유가를 흡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AI 산업은 고유가를 상당 기간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균형 잡힌 방식의 흡수가 아니라, 비용 상승을 감내하면서 투자와 기대를 동시에 유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불균형은 누적되며, 일정 시점 이후에는 CAPEX의 재조정이나 수익성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블의 존재 여부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다. AI 산업은 장기적으로 매우 큰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가치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귀속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 불확실성 위에서 자본이 선행적으로 투입되는 한, 수요와 공급이 항상 완벽하게 일치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접근일 수 있다.
PS – AI의 발전 속도는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쉽게 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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