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모델의 승패는 불확실하지만, 인프라의 필요성은 확실하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 확실성 위에 구축된 기업이다.
1. 멈출 수 없는 AI 경쟁과 불확실성
AI 산업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자본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다. 각국의 정부와 대기업들은 단순히 기술을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향후 IT 시스템 전체의 주도권을 두고 싸우고 있다. AI는 단일 산업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운영 논리를 다시 짜는 인프라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누가 연산 자원을 확보하고, 데이터를 통제하며,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이 경쟁은 멈출 수 없는 구조를 지닌다. 한 기업이 투자를 중단하는 순간 기술 격차는 벌어지고, 데이터 축적이나 모델 정교화에서 밀리면 다시 따라잡기 어렵다. 대규모 언어모델과 생성형 AI는 일정 규모 이상의 연산과 데이터가 있어야만 효율이 유지되므로, 투자 중단은 곧 도태를 의미한다. 지금의 시장 구도는 수익성보다 생존에 가까운 게임이다.
이런 경쟁은 과거 인터넷 브라우저나 스마트폰 OS 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당시 싸움이 소비자 인터페이스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었다면, 지금의 AI는 산업 전체의 정보 흐름과 시스템 구조를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다. 일단 생태계의 핵심이 된 모델이 운영 체계, 검색, 클라우드, 보안까지 연결되면 플랫폼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주도권 유지가 우선순위가 된다.
다만 지금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 기업들이 미래의 과실을 거둘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 사이클의 초기 투자자들이 최종 승자가 된 사례는 많지 않다. 인터넷 버블 시기 수많은 통신 인프라 기업들이 망했지만, 그 기반 위에서 구글과 아마존 같은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했다. AI 역시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지금의 선두 주자들이 과잉 경쟁과 비용 부담 속에서도 끝내 시장을 지배할 수도 있고, 반대로 새로운 세대의 기업이 이들이 깔아놓은 인프라 위에서 전혀 다른 질서를 세울 수도 있다. 기술 사이클의 초입부에서는 언제나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지만, 그 과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드러난다.
2. 부족한 AI 인프라
현재 명백한 점은 AI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AI 열풍은 기술력이나 알고리즘의 진보보다 물리적 인프라의 제약에 부딪히고 있다. GPU 공급은 한정돼 있고,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급은 빠르게 한계에 이르고 있다. 냉각 시스템과 통신망 대역폭 역시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 AI 학습은 단순히 서버를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막대한 전력과 안정적인 송전망, 고효율 냉각 설비, 그리고 대규모 데이터 전송 인프라를 동시에 필요로 하는 산업 공정이다. 지금은 기술이 아니라 인프라가 속도를 결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병목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몇 년 사이 급격히 증가했고, 일부 주에서는 발전 용량과 송전선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신규 시설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애초에 데이터센터는 도시 외곽이나 전력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집중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전력망이 과부하되면 그 여파가 전력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미 버지니아, 텍사스, 네바다 등 주요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에서는 전력망 안정화가 산업 차원의 이슈로 떠올랐다. 유럽과 아시아도 다르지 않다. 유럽에서는 환경 규제와 송전 인허가 절차가 복잡해 인프라 확장이 지연되고 있고, 한국·일본·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국 역시 전력 밀집 지역의 부하율이 임계치에 근접해 있다. 결국 AI 산업의 확장 속도는 전력망 증설 속도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이처럼 인프라 부족이 명확해지면서, AI 투자는 점점 ‘전력 중심 산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엔비디아가 GPU를 공급하고, 클라우드 기업이 모델을 운영하지만, 그 밑단에서 실제로 시스템을 돌리는 것은 전력, 냉각, 물류, 건설 산업이다. 데이터센터의 평균 전력 밀도는 일반 산업용 설비의 수십 배에 달하며, 첨단 칩이 생산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와 공조 설비가 대규모로 투입된다. 냉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북부 지역이나 수자원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집중되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AI 인프라의 확충은 더 이상 IT 영역이 아니라 에너지·건설·자본재 산업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 같은 인프라 투자는 버블 논란을 낳기 쉽다. AI 산업이 아직 안정적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십조 원 규모의 전력 설비와 서버 인프라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물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투자는 단기 유행이 아니라 미래 자산의 축적에 가깝다. GPU 팜, 송전선, 냉각 설비, 통신망 같은 물리적 인프라는 한 번 구축되면 장기간 활용된다. 2000년대 초 인터넷 버블 시기에도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버블이 꺼진 뒤 많은 기업이 사라졌지만, 그 시기에 깔린 광케이블과 네트워크 인프라는 10년 뒤 클라우드 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기업들은 지금 당장의 손익보다 미래의 구조적 지위를 중시하고 있다. AI 시장은 기술력만으로 경쟁하기 어렵고, 인프라 접근권 자체가 진입장벽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전력, 데이터센터, 반도체, 통신망 같은 실물 인프라 투자는 기업의 장기 전략과 직결된다. 이 영역은 단기적인 수요와 무관하게 꾸준히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3. 리쇼어링
AI 인프라 확충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지정학적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인식되면서, 주요국은 생산 기반과 데이터 통제권을 자국 안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이 부분에서 가장 적극적이다. 인공지능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반도체·데이터센터·클라우드 서버 등 핵심 인프라가 해외 의존에 놓이지 않도록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해 산업 구조 자체를 새로 짜고 있는 셈이다.
리쇼어링은 표면적으로는 일자리 회복과 제조업 부활을 내세우지만, 실제 목적은 훨씬 전략적이다. 핵심 기술과 생산 능력을 자국 내에서 완결시키려는 것이다. AI 모델의 학습에는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그 데이터가 저장되고 처리되는 물리적 공간이 곧 안보와 직결된다. 데이터가 곧 정보력이고, 정보력은 통제력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반도체·전력·배터리·통신·데이터센터 같은 기반 산업 전반을 ‘신뢰 가능한 영역’으로 묶으려 하고, 유럽·일본·한국 등 동맹국 중심의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 흐름은 AI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은 CHIPS Act를 통해 대규모 생산설비를 미국 내에 짓고 있고, 배터리 산업은 IRA를 기반으로 북미 중심의 가치사슬을 빠르게 형성하고 있다. 전력망과 송배전 인프라, 냉각 설비, 산업용 자본재 역시 현지 조달 비중을 높이고 있다. 나아가 희토류, 정유·석유화학, 기초소재 등 에너지 안보와 연계된 부문까지 리쇼어링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기술 경쟁이 경제 재편을 이끌고, 경제 재편이 다시 정치·안보 전략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인프라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24년 이후 발표된 주요 프로젝트를 보면,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전국 각지에서 데이터센터를 신설하거나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 맞춰 전력망 보강, 고압 송전선 건설, 재생에너지 발전소 증설이 동시에 추진된다. 이는 단순히 IT 투자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 건설, 물류, 금융, 보험 등 전통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자본 순환의 흐름이다.
리쇼어링은 단기적으로 비용 부담을 높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산업 구조를 재정비하고 내실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고밀도 전력 소비 시설로, 기존 산업 설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전력 안정성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송전·배전망, 재생에너지, 에너지 저장장치(ESS) 같은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음과 동시에 건설, 물류, 보험 같은 기반 산업에도 새로운 성장 기회가 생기고 있다.
4. 버크셔의 구조적 포지션
이전까지의 흐름을 보면, AI 산업의 확장은 기술 기업의 경쟁을 넘어 전력, 물류, 건설, 금융이 맞물린 거대한 실물 투자 사이클로 옮겨가고 있다. 이 구도 속에서 버크셔 해서웨이는 직접적인 AI 플레이어가 아님에도 구조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혜를 받을 위치에 서 있다. 시장에서는 흔히 버크셔를 워렌 버핏의 상장 주식 포트폴리오로만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운영 자회사를 거느린 복합 산업형 지주회사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버크셔를 지탱하는 핵심 축은 철도, 에너지, 보험이다.
버크셔의 철도 부문인 BNSF는 북미 최대의 화물 운송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대규모 인프라 건설이 진행될 때, 철강·시멘트·변압기·중장비 같은 자재는 대부분 철도를 통해 운반된다. 데이터센터 역시 예외가 아니다. AI 인프라 확장이 가속화될수록 이러한 자재 물류가 꾸준히 늘어나고, BNSF는 그 흐름의 가장 앞단에서 수혜를 받는다. 철도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산업 간 자본재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실물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AI 시대의 인프라 수요가 지속되는 한, BNSF의 물동량과 현금흐름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BHE)가 중심이다. BHE는 미국 주요 지역의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전력 수요 증가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 기업 중 하나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되는 고밀도 전력 소비 시설로, 일반 산업 설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전력 안정성이 요구된다. 이런 특성은 전력 공급자에게 안정적 장기 수익을 제공한다. BHE는 이미 아이오와, 네바다, 서부 지역 등에서 대규모 송전선 확충과 풍력·태양광 발전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전력망의 확충이 AI 인프라 성장의 병목을 해소하는 핵심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BHE는 향후 수년간 구조적 성장 구간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보험 부문은 버크셔의 자본 순환 구조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GEICO, General Re 등에서 발생하는 보험료 수입은 단순한 수익이 아니라, 버크셔 내부의 ‘자본 풀’을 형성한다. 보험금이 실제로 지급되기 전까지 쌓이는 이 자금은 투자 가능한 현금흐름으로 전환되며, 버핏이 장기적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내부 금융 엔진이 된다. 외부 차입 없이 안정적인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금리 변동이나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장기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버크셔의 근본적 강점이다.
이 세 가지 축—철도, 에너지, 보험—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AI 인프라 확장이라는 공통된 흐름 아래에서 맞물려 돌아간다. 철도는 물류를, 에너지는 전력을, 보험은 자본을 공급한다. 버크셔는 이 세 축을 모두 내부적으로 보유함으로써, AI 산업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깊이 연결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5. 마무리
현재 AI 경쟁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이 IT 시스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기술 패권 전쟁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인 수익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자본과 인프라 확보가 우선 과제가 된다. 하지만 경쟁이 과열될수록 실제 수익은 인공지능 자체보다 그 기반을 지탱하는 산업으로 흘러간다.
전력, 철도, 건설, 보험 같은 인프라 기반 산업은 AI 버블의 승패와 무관하게 성장할 수 있다. 모델 경쟁이 끝나더라도, 남는 것은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다. 버크셔는 그 하부 구조를 장악한 기업이며, AI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장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PS – 2008년 철도 투자는 신의 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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