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차세대 콘솔 PS6부터 물리 디스크 드라이브를 장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을 이끈 요인은 크게 3가지로 예상된다. 첫 번째 요인은 디지털 판매 비중의 압도적인 성장이다. 최근 회계 분기 기준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의 매출 중 80% 이상이 디지털 다운로드 및 서비스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디 게임이나 추가 콘텐츠 다운로드로 인한 통계적 왜곡을 감안하더라도 대다수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이미 디지털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플랫폼 홀더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디지털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굳이 제조 원가가 추가되는 디스크 드라이브를 유지할 명분은 희석된다.
두 번째 요인은 블루레이 디스크가 가진 기술적 한계와 실물 소유 개념의 변화다. 과거의 패키지는 디스크 내부에 완전한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어 기기만 있으면 영구적으로 구동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최신 AAA급 타이틀의 용량이 수백 기가를 넘어서면서 블루레이 디스크는 게임의 실행 권한만을 확인하는 일종의 인증 키 역할에 머물고 있다. 유저는 디스크를 삽입한 후에도 온라인 서버를 통해 대규모 패치와 추가 에셋을 별도로 다운로드받아야만 정상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다. 결국 온라인 서버의 존속 여부에 따라 게임의 수명이 결정되므로 실물 디스크를 소유한다고 해서 완전한 소유권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세 번째 요인은 유통 구조 혁신을 통한 이익률 개선이다. 실물 패키지를 생산하지 않으면 디스크 프레싱 비용, 패키지 제작비, 전 세계 물류 및 재고 관리 비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보다 결정적인 이익은 중고 거래 시장의 차단에서 나온다. 플랫폼 홀더와 개발사에게 단 한 푼의 로열티도 제공하지 않는 회색 지대였던 중고 마켓이 전면 디지털화로 인해 소멸하면 소비자의 모든 구매 행위는 오직 소니의 독점 스토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중고 수요의 상당 부분이 신품 디지털 구매로 강제 전환됨에 따라 소니의 마진율은 극대화된다(전부 전환되긴 어려움).
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플랫폼 홀더의 이러한 일방적인 조치가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첫 세대 플레이스테이션 시절부터 콘솔을 즐겨온 코어 유저들에게 패키지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유통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을 증명하고 소장 가치를 충족하는 상징적 자산이었다. 기술적으로 디스크가 인증 키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실물 패키지를 소유할 때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과 시각적 만족감은 디지털 라이선스 구매로 대체하기 어렵다. 또한 전면 디지털화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중고 거래를 통한 비용 절감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는 점에서 강한 거부감을 유발한다.
더욱이 소니의 이번 행보는 과거의 마케팅 전략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배신감을 안겨준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가 XBOX ONE을 발표하며 패키지 공유 제한과 상시 온라인 인증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웠을 때 소니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패키지 교환이 자유롭다는 점을 홍보 영상으로 제작해 조롱했다. 이 마케팅을 통해 PS4가 유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아는데, 지금에 이르러 과거 자신들이 비난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은 소비자 입장에서 괘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전면 디지털화는 콘솔 기기 자체의 구매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 된다. 과거에는 패키지 매매라는 콘솔 고유의 경제적 생태계가 PC 생태계로의 이탈을 막는 방어선 역할을 했다. 그러나 디지털 스토어 간의 경쟁으로 구도가 바뀌면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최대 디지털 플랫폼인 스팀과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를 정면으로 비교하게 된다. 상시적인 대규모 할인 정책과 하드웨어 확장성을 갖춘 스팀에 비해 가격 통제권이 독점된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는 가격 경쟁력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S6의 초기 판매량과 흥행 전망이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콘솔이 가진 본질적인 경쟁력에 있다. 콘솔 시장이 역사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동력은 패키지 소장보다는 고사양 게이밍 환경을 제공하는 비용 효율성, 즉 가성비에 있었다. 동일한 그래픽 성능을 내는 게이밍 PC를 조립하려면 콘솔 가격의 최소 1.5배에서 2배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최근 콘솔 기기의 절대적인 가격이 상승하며 저항선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있으나 PC 하드웨어 부품의 인플레이션 역시 극심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가성비 격차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플랫폼 홀더들이 하드웨어를 손해 보거나 마진 없이 공급하고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 서비스로 이를 회수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는 한 콘솔의 가격 메리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순한 부품 스펙 외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유기적인 결합이 주는 유저 경험도 콘솔의 강력한 해자다. PC 게이밍은 운영체제의 파편화, 드라이버 충돌, 사양별 옵션 타협 등 유저가 감당해야 할 기술적 스트레스가 크다. 반면 콘솔은 규격화된 단일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설계되므로 개발사가 기기의 성능을 한계까지 쥐어짜는 최적화가 가능하다. 전원만 켜면 즉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편의성과 전용 컨트롤러의 촉각 피드백 기능이 시스템 레벨에서 완벽하게 상호작용하는 UX는 PC가 쉽게 제공하기 힘든 영역이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에 대한 코어 유저들의 반발이 존재하더라도 뛰어난 최적화와 편의성을 앞세운 PS6는 대중적인 판매량을 순조롭게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진짜 구조적인 위기는 기기 자체의 흥행 실패가 아니라 밸브가 추진하는 스팀머신 생태계의 고도화에서 발생할 수 있다. 현재 공개된 스팀머신은 메모리 공급난과 제조 보조금 부재로 인해 가격이 높고 하드웨어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밸브는 스팀이라는 거대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하드웨어 R&D를 지속할 체력을 가지고 있다. 스팀덱을 통해 리눅스 기반 운영체제와 호환 레이어를 발전시켰던 것처럼 2세대, 3세대 모델을 거치며 하드웨어 마진을 줄이고 기기 완성도를 콘솔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기존 콘솔 진영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콘솔이 PC 대비 가지는 최대 강점인 ‘규격화된 부품을 기반으로 한 최적화’가 고정된 스펙을 가진 스팀머신에서 구현된다면 시장의 판도는 크게 달라진다. 개발사들이 스팀머신 규격이라는 기준점을 잡고 최적화를 진행할 수 있게 되면 PC 게임의 고질적인 병폐인 프레임 드랍이나 자원 낭비가 해결된다. 하드웨어의 규격화와 밸브의 플랫폼 제어 능력이 결합하면 스팀머신은 PC의 범용성과 콘솔의 최적화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점 IP의 종적 깊이가 얕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는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닌텐도의 경우 성능이 낮아도 마리오나 젤다 같은 대체 불가능한 자체 IP를 보유하고 있어 외부 하드웨어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 반면 소니의 핵심 AAA급 타이틀은 닌텐도만큼 뎁스가 깊지 않다. 만약 거실 TV에 연결해 전원만 켜면 스팀 라이브러리의 수많은 게임을 콘솔처럼 쾌적하게 구동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스팀머신이 안정적인 가격에 보급된다면 유저들이 소니의 폐쇄적인 독점 디지털 생태계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결국 소니의 디지털 전면화 전략은 유저들을 스팀이라는 더 크고 자유로운 디지털 전장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반대로 소니의 이러한 실험적 전환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경쟁사인 닌텐도의 향후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썬 닌텐도가 급진적인 완전 디지털화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아동 청소년 중심의 선물 수요와 오프라인 소매점과의 상생 관계가 확고한 닌텐도는 물리 매체를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실물 자산의 가치를 점진적으로 희석하는 우회로를 선호한다(PS만큼 디지털 판매 비중이 높지 않음. 그러나 디지털 판매 비중이 패키지 판매 비중을 넘어섰으며,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팩트임). 이미 카트리지의 용량 한계와 단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물 칩에는 라이선스 키만 저장하고 실제 게임 데이터는 eShop에서 받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패키지의 형태를 유지해 소비자의 소장 욕구와 구매 편의성을 충족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디지털 유통의 이점을 누리는 타협점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콘솔 시장은 과거 음악 산업이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되었던 것과 유사한 경로를 밟아가고 있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소비는 다운로드 방식으로 무형화되지만 코어 유저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한정판 시스템은 더욱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대형 AAA 게임의 컬렉터즈 에디션 구성품을 보면 고가의 피규어나 아트북은 포함하면서 정작 게임은 디스크 없이 디지털 다운로드 코드로 제공하는 사례가 일반화되었다. 이는 대중에게는 완전한 디지털 소비를 강제하고 실물 자산에 집착하는 소수의 헤비 유저에게는 고급화된 굿즈 패키지를 판매하여 수익을 다각화하려는 비즈니스 모델이 주류로 안착했음을 보여준다. 소니의 PS6 디지털 전환 전략은 플랫폼 마진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논리와 변형된 형태로 생존하려는 소비자의 소유욕이 타협하는 새로운 생태계의 시작점이고, 그 결과가 콘솔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사료된다.
PS – 게임만큼 가성비있는 취미는 없다.